천상병 - 장마

좋은 글귀 2013. 6. 19. 08:28 Posted by 따시쿵



장 마


                                   천상병


내 머리칼에 젖은 비 

어깨에서 허리께로 줄달음치는 비 

맥없이 늘어진 손바닥에도 

억수로 비가 내리지 않느냐, 

비여 

나를 사랑해 다오. 


저녁이라 하긴 어둠 이슥한 

심야(深夜)라 하긴 무슨 빛 감도는 

이 한밤의 골목 어귀를 

온몸에 비를 맞으며 내가 가지 않느냐, 

비여 

나를 용서해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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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hann Wolfgang von Goethe, 1749-1832

 

1749년 8월, 황실 고문관인 아버지와 프랑크푸르트 시장의 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1765년에 법률학을 배우기 위해 라이프치히 대학에 입학했다. 이때 처음으로 자유롭게 레싱, 빙켈만 등을 읽었다. 그러나 1768년 폐결핵으로 학업을 중단하고 귀향했다. 1770년 슈트라스부르 대학에 입학하여 다시 법률 공부를 하는 동시에 의학 강의도 들었다. 이때 헤르더와 교제하면서 호메로스, 성서, 오시안, 민요, 셰익스피어 등을 알게 되는데, 이로써 '슈투름 운트 드랑', 즉 질풍노도 문학 운동이 준비되기 시작했다. 법률 학위를 받은 괴테는 고향 프랑크푸르트로 돌아와 변호사 활동을 시작하는 한편, 문학에도 열성을 다하여 『괴츠 폰 베를리힝엔』의 초고를 완성했다. 이 희곡은 출간되자 대중과 지식인들의 열광적인 갈채를 받았고, 괴테는 독일의 작가로 명성을 떨쳤다.

 

1772년 괴테는 베츨라의 고등 법원에서 견습 생활을 시작했다. 이곳에서의 생활은 괴테에게 남다른 의미를 갖는다. 바로 그를 독일의 작가에서 세계적 작가로 우뚝 서게 한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Die Leiden des jungen Werther』의 무대가 된 곳이기 때문이다. 베츨라에서 괴테는 약혼자가... 1749년 8월, 황실 고문관인 아버지와 프랑크푸르트 시장의 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1765년에 법률학을 배우기 위해 라이프치히 대학에 입학했다. 이때 처음으로 자유롭게 레싱, 빙켈만 등을 읽었다. 그러나 1768년 폐결핵으로 학업을 중단하고 귀향했다. 1770년 슈트라스부르 대학에 입학하여 다시 법률 공부를 하는 동시에 의학 강의도 들었다. 이때 헤르더와 교제하면서 호메로스, 성서, 오시안, 민요, 셰익스피어 등을 알게 되는데, 이로써 '슈투름 운트 드랑', 즉 질풍노도 문학 운동이 준비되기 시작했다. 법률 학위를 받은 괴테는 고향 프랑크푸르트로 돌아와 변호사 활동을 시작하는 한편, 문학에도 열성을 다하여 『괴츠 폰 베를리힝엔』의 초고를 완성했다. 이 희곡은 출간되자 대중과 지식인들의 열광적인 갈채를 받았고, 괴테는 독일의 작가로 명성을 떨쳤다.

 

1772년 괴테는 베츨라의 고등 법원에서 견습 생활을 시작했다. 이곳에서의 생활은 괴테에게 남다른 의미를 갖는다. 바로 그를 독일의 작가에서 세계적 작가로 우뚝 서게 한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Die Leiden des jungen Werther』의 무대가 된 곳이기 때문이다. 베츨라에서 괴테는 약혼자가 있는 샤를로테 부프를 연모했는데, 이 체험은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 거의 사실 그대로 담겨 있다. 부프에게 사랑을 거절당한 괴테는 도망치듯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 후 3년간 괴테는 프랑크푸르트에서 생활하면서 많은 문학적 결실을 거두었다. 바로 기존의 무미건조한 형식미에서 탈피하여 인간 본연의 감정에 충실할 것과 인습적에 것에 대한 저항을 모토로 한 슈투름 운트 드랑의 시기였던 것이다. 그 절정을 이룬 것이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었다.

 

1775년 카를 아우구스트의 초청으로 바이마르를 방문하여 그곳에 정착하기로 결심했다. 이로써 괴테는 슈투름 운트 드랑의 시기를 마감하고 추밀참사관에 임명되어 행정적인 활동을 했다. 다망한 정무 생활 틈에서도 지리학, 식물학, 광물학 등 자연에 대한 연구에도 몰두했다. 그러나 창작 면에서는 침체기였다고 할 수 있는데, 1786년(37세) 이탈리아 여행길에 오름으로써 다시 예술의 세계로 돌아가는 계기를 마련했다. 2년간의 이탈리아 여행은 괴테에게 예술가로서의 자신을 재발견한 시기였다고 할 수 있다.

 

1788년 바이마르로 돌아온 괴테는 정무에서 떠나 고독 속으로 숨었다. 이때 나중에 정식 부인이 된, 평민 출신의 크리스티아네 불피우스를 만나 동거를 시작했고, 실러와도 처음으로 만났다. 1794년부터 실러와 깊은 친교를 나누기 시작한 괴테는 실러가 발행하던 문학 잡지인 『호렌』에 글을 기고하기도 했다.
1805년부터 1815년에 걸친 나폴레옹 전쟁 동안 나폴레옹을 세 번이나 만난 한편, 독일 문학 최초의 사회 소설로 평가받는 『친화력』를 완성했고, 자서전의 백미로 꼽히는 『시와 진실』 1∼3부도 완성했으며, 『서동시집』 집필에도 착수했다. 1821년 『빌헬름 마이스터의 편력 시대』를 완성했으며, 죽기 1년 전 대작 『파우스트』를 완성했으며 1832년 바이마르 자택에서 숨을 거두었다.

 

 

5월 12일

 

이곳에 사람을 홀리는 정령이 떠돌고 있기 때문인지, 아니면 내 가슴속에 풍부한 상상력이 깃들어서 그런지는 알 수 없지만, 나를 둘러싼 모든 것이 낙원처럼 느껴지네.

 

거리를 벗어나면 샘이 하나 있네. 나는 마치 메루지네와 그 자매들처럼 그 샘이 지닌 마술의 힘에 이끌려 그 곁을 떠나지 못한다네. 조그마한 언덕을 내려가면 아치형의 문 앞에 이르는데, 거기서 다시 스무 계단쯤 아래로 내려가면 그 밑에 샘이 있네. 말할 수 없이 맑고 차가운 물이 대리석 바위틈에서 솟아 나오지. 샘을 둘러싸고 있는 돌담, 그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높은 나무들, 그리고 그곳에 감도는 시원한 분위기, 이 모든 것에 왠지 사람의 마음을 끌어당기고 몸가짐을 엄숙하게 하도록 만드는 그 어떤 분위기가 있단 말일세.

 

나는 날마다 그곳에 앉아서 1시간쯤 시간을 보내네. 그러고 있노라면 시내에 처녀들이 물을 길으러 오네. 물을 긷는 일은 소박하지만 꼭 필요한 일이야. 옛날에는 공주님까지도 손수 물을 길었다고 하네. 그곳에 앉아서 구경하고 있노라면, 옛날 우리 조상들이 샘물가에서 만나 서로 사귀고 결혼 이야기를 나누던 장면이 원히 떠오른다네. 그리고 샘물가에 떠돌고 있는 자비로운 정령들이 느껴지네.

 

아아, 이런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은 무더운 여름 날 힘든 여행을 마치고 마시는 시원한 우물의 상쾌한 기분을 느껴 보지 못한 사람임이 틀림없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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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운 '記者'의 이름

일상다반사 2013. 5. 14. 18:18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1996년, 사회에서 처음 기자질을 시작했을 때 신문사 선배들은 엄청난 양의 술을 퍼먹이면서 별의별 되도 않는 말을 주절거렸더랬다.

그 '되도 않는 말'에는 참 여러가지로 기함할만한 말들이 많았지만, 특히 기억나는 말은 '돈 내지 않는다. 줄 서지 않는다, 10만원 밑으로는 받지도 마라. 널 무시하는 것이므로...' 따위의 말이 있었다.

짬밥 깨나 먹었다는 이 선배의 말은, 이제 갓 신문사에 입사한 내가 들어도 참으로 유치하고 어이없는 것이었다. 물론 우리 신문사에는 이런 인종들만 있는건 아니었다. 漢學에 조예가 깊은 마음 넓은 선배도 있었고 호탕하기 그지없는 선배도 있었다. 그러나 이런 선배들은 신문사에서 기 한번 펴지 못했다. 돈 안 내고, 줄 안 서는 미친 선배들이 신문사를 쥐락펴락했더랬다.

정미홍이라는, 기자밥을 괴상하게 먹은 이 여인이, 30년 기자생활을 한 윤머시기를 믿었다가 죄다 거짓말인걸 보고 배신감을 느낀다고 썰을 푼다. 똥은 똥끼리 뭉친다더니, 괴상하게 기자질 한 인간들이 주거니 받거니 훈훈한 멘트를 날리고 있다. 다 썩어빠진 기자질을 한 듯싶다. 문제는, 기자질을 몇 년 동안 했냐는게 아니라, 기자질을 얼마나 어떻게 '제대로' 했느냐는 거다. 윤가나 정가나, 모두들 기자를 '한' 것이 아니라 기자를 '누린' 것이라고 나는 본다. 알량한 그 기자질들을 하면서 얼마나 많은 빨대를 꽂았을까. 여기저기 피빨린 사람들 수억 수천일지도 모른다.

두 눈 부릅뜨고 또박또박 걸어도 똑바로 살기가 어려운 시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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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석희 - 지각인생

좋은 글귀 2013. 5. 10. 15:38 Posted by 따시쿵



지각인생


                                              손석희


나는 지각인생을 살고 있다

남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몰라도 나는 내가 지각인생을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대학도 남보다 늦었고 사회진출도 남들보다 짧게는 1년 길게는 3~4년 정도 늦은 편이다

능력이 부족했거나 다른 여건이 여의치 못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모든 것이 이렇게 늦다 보니 내게는 조바심보다 차라리 여유가 생긴 편인데

그래서인지 시기에 맞지 않거나 형편에 맞지 않는 일을 가끔 벌이기도 한다

 

내가 벌인 일 중 가장 뒤늦고도 내 사정에 어울리지 않았던 일은

나이 마흔을 훨씬 넘겨 남의 나라에서 학교를 다니겠다고 결정한 일일 것이다

 

1997년 봄 서울을 떠나 미국으로 가면서

나는 정식으로 학교를 다니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남들처럼 어는 재단으로부터 연수비를 받고 가는 것도 아니었고

직장생활 십수년하면서 마련해 두었던 알량한 집 한채 전세 주고

그 돈으로 떠나는 막무가내식 자비 연수였다

그 와중에 공부는 무슨 공부 학교에 적은 걸어놓되

그저 몸 성히 잘 빈둥거리다가 오는 것이 내 목표였던 것이다.

 

그러던 것이 졸지에 현지에서 토플 공부를 하고

나이 마흔 셋에 학교로 다시 돌아가게 된 까닭은

뒤늦게 한 국제 민간재단으로부터 장학금을 얻어낸 탓이 컸지만

기왕에 늦은 인생, 지금에라도 한번 저질러 보자는 심보도 작용한 셈이었다

 

미네소타 대학의 퀴퀴하고 어두컴컴한 연구실 구석에 쳐박혀

낮에는 식은 도시락 까먹고 저녁에는 근처에서 사온 햄버거를 꾸역거리며 먹을 때마다

나는 서울에 있는 내 연배들을 생각하면서 다 늦게 무엇하는 짓인가 후회도 했다

20대의 팔팔한 미국 아이들과 경쟁하기에는 나는 너무 연로해 있었고

그 덕에 주말도 없이 매일 새벽 한두시까지 그 연구실에서 버틴 끝에 졸업이란 것을 했다

돌이켜보면 그때 나는 무모했다 하지만 그때 내린 결정이 내게 남겨준 것은 있다

그 잘난 석사 학위? 그것은 종이 한장으로 남았을 뿐 그보다 더 큰 것은 따로 있다

 

첫 학기 첫 시험때 시간이 모자라 답안을 완성하지 못한 뒤

연구실 구석으로 돌아와 억울함에 겨워 찔끔 흘렸던 눈물이 그것이다

중학생이나 흘릴 법한 눈물을 나이 마흔 셋에 흘렸던 것은

내가 비록 뒤늦게 선택한 길이었지만

그만큼 절실하게 매달려 있었다는 방증이었기에 내게는 소중하게 남아있는 기억이다.

 

혹, 앞으로도 여전히 지각인생을 살더라도

그런 절실함이 있는 한 후회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지각인생도 자기가 어떻게 살아가느냐에 따라 때론 멋진 인생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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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원 -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

좋은 글귀 2013. 4. 25. 08:26 Posted by 따시쿵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

 

                                    정지원

 

단 한 번이라도

목숨과 바꿀 사랑을 배운 사람은

노래가 내밀던 손수건 한 장의

온기를 잊지 못하리

지독한 외로움에 쩔쩔매도

거기에서 비켜서지 않으며

어느 결에 반짝이는 꽃눈을 닫고

우러우렁 잎들을 키우는 사랑이야말로

짙푸른 숲이 되고 산이 되어

메아리로 남는다는 것을

 

강물 같은 노래를 품고 사는

사람은 알게 되리

내내 어두웠던 산들이 저녁이 되면

왜 강으로 스미어 꿈을 꾸다

밤이 길수록 말없이

서로를 쓰다듬으며 부둥켜 안은 채

느긋하게 정들어 가는지를

 

누가 뭐래도 믿고 기다려주며

마지막까지 남아

다순 화음으로 어울리는 사람은 찾으리

무수한 가락이 흐르며 만든

노래가 우리를 지켜준다는 뜻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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랄프 왈도 에머슨 - 성공이란

좋은 글귀 2013. 4. 1. 08:07 Posted by 따시쿵

 

성공이란

 

                          랄프 왈도 에머슨

 

날마다 많이 웃게나.

지혜로운 사람에게 존경받고

해맑은 아이들에게 사랑을 받는 것,

정직한 비평가들에게 인정을 받고

거짓된 친구들의 배반을 견뎌내는 것,

진정한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다른 사람의 장점을 알아보는 것,

튼튼한 아이를 낳거나

한 뼘의 정원을 가꾸거나

무엇이든 자신이 태어나기 전보다

조금이라도 나은 세상을 만들어 놓고 가는 것,

자네가 이곳에 살다간 덕분에

단 한 사람의 삶이라도 더 풍요로워지는 것,

이것이 바로 성공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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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뚱멀뚱.. 어디로 가야 할지 주위를 살핀다
아들이랑 공놀이도 제법 잘하고 공을 입으로 몰고 달린다 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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