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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2.12.16 이형기 - 낙화 (1)
  2. 2012.11.23 조지훈 - 낙화 (2)

이형기 - 낙화

좋은 글귀 2012.12.16 18:18 Posted by 따시쿵

 

 


낙 화

 

                 이 형 기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봄 한철

격정을 인내한

나의 사랑은 지고 있다.

 

분분한 낙화......

결별이 이룩하는 축복에 싸여

지금은 가야 할 때,

 

무성한 녹음과 그리고

머지않아 열매 맺는

가을을 향하여

나의 청춘은 꽃답게 죽는다.

 

헤어지자

섬세한 손길을 흔들며

하롱하롱 꽃잎이 지는 어느 날

 

나의 사랑, 나의 결별,

샘터에 물 고이듯 성숙하는

내 영혼의 슬픈 눈.

 

이형기 시인은 1950년 시 [비 오는 날]을 잡지 <문예>에 발표하면서 등단했다. 그때 그의 나이 열일곱살. 최연소 등단 기록이었다. "시란 본질적으로 구축해 놓은 가치를 허무화시키는 작업이야. 시에 절대적 가치란 없어. 자꾸 다른 곳으로 가는 팔자를 타고난 놈들이 시인이야. 그 무엇이건 전적으로 수용하지 않으려는 정신의 자유 말이야" 그는 시 창작뿐만 아니라 소설, 평론, 수필 등에 이르기까지 열정적인 창작 활동을 펼쳤다. 초기에는 자연 서정을 선보였으나 현대 문명을 통렬하게 비판하는 악마적이고 그로테스크한 시세계로 나아갔다. 그는 한국 시사에서 존재론적 미학을 선보였다.

 

"고독과 고통은 시인의 양식"이라고 말했던 그는 뇌졸중으로 쓰러져 오랜 투병 생활을 했다. 그러나 고통스러운 병석에 있으면서도 아내의 대필로 시를 계속 창작했다. 그는 슬픔에 휩싸인 사람들을 위로하며 이렇게 아포리즘을 남겼다. "슬퍼할 수밖에는 없는 일이 이 세상에는 적지 않다. 그때는 슬퍼해 봐도 물론 아무 소용이 없는 일이다. 그러나 아무 소용이 없기 때문에 슬퍼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슬픔은 그 차제가 목적이 될 수 있는 것이다.그리고, 그런 슬픔은 가장 순수하고 따라서 값지다."

 

꽃의 낙화에는 만행을 떠나는 수행자의 뒷모습이 있다. 미련 없이 돌아서기 때문에 낙화에는 요사도 구차도 없다. 아쉬움이 없을 이 없다. 이별은 등 뒤를 허전하게 만들고, 며칠 눈물을 돌게 할 것이다. 그러나 제때에 따나감은 말끔하고 쾌적하다.

 

새잎이 돋고,줄기가 힘차게 뻗고, 꽃이 벙글고, 꽃벌이 꽃의 외곽을 맴돌고, 비로소 어느 아침에는 꽃이 "하롱하롱" 지고, 꽃의 시간을 구구절절 기억하며 열매가 맺히고...... 우리의 몸과 마음도 이 큰 운행을 벗어나기 어렵다.

 

부귀는 빈천으로 바뀌고, 만남은 이별로 바뀌고, 건강은 늙고 죽음을 초래한다. 시시각각 바뀐다. 그래서 이런 것에는 견실성이 없다. 견실성이 없으므로 집착할 것이 못 된다. 이형기 시인의 초기 시에 속하는 이 시는 집착 없음과 아름다운 물너남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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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훈 - 낙화

좋은 글귀 2012.11.23 18:44 Posted by 따시쿵

 

낙    화            

                          조 지 훈

 

꽃이 지기로서니

바람을 탓하랴

 

주렴 밖에 성긴 별이

하나 둘 스러지고

 

귀촉도 울음 뒤에

머언 산이 다가서다,

 

촛불을 꺼야 하리

꽃이 지는데

 

꽃 지는 그림자

뜰에 어리어

 

하이얀 미닫이가

우련 붉어라.

 

묻혀서 사는 이의

고운 마음을

 

아는 이 있을까

저어하노니

 

꽃이 지는 아침은

울고 싶어라.

 

 

천지에 꽃 피는 소리 가득하다. 등성이는 등성이대로 기슭은 기슭대로 봄꽃들 넘쳐 난다. 껍질만 살짝 문질러도 생강 냄새가 확 풍기는, 산수유꽃 닮은 생강나무꽃, 사람 환장하게 한다는 산복사꽃, 개살구꽃. 그리고 제비꽃, 메꽃, 달맞이꽃, 애기똥풀꽃, 쑥부쟁이꽃. 이 꽃들의 소요! 사람 홀린다는 흰동백꽃, 바람 불 때마다 이리저리 흔들린다는 꿩의바람꽃. 아침이면 수줍은 듯 고개 숙이다가 해가 나면 자줏빛 꽃잎을 활짝 연다는 바람난 처녀꽃 엘레지꽃. 홀아비바람꽃, 너도바람꽃. 며느리배꼽꽃. 저 꽃들의 고요.

 

"어진 이는 만월滿月을 경계하고 / 시인은 낙화를 찬미하나니 / 그것은 모순의 모순이다."(한용운 [모순])라고 했거늘, 꽃이 떨어지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사람이야말로 세속의 분별과 속도로부터 한 걸음 물러서 있는 사람이리라. 조지훈 시임은 섭리로부터의 소멸에 대한 아름다운 통찰을 보여 준 시인이다.'지조志操'를 지킨 논객이었으며, '주정酒酊'의 교양과 '주격酒格'의 품계를 변별했던 풍류를 아는 학자였으며, 무엇보다 낙화를 찬미할 줄 아는 시인이었다.

 

이 시는 화두처럼 시작한다. "꽃이 지기로서니 / 바람을 탓하랴". 꽃은 바람에 지지 않는다. 피면 지고, 차면 이울기 마련이라서, 꽃은 꽃의 시간이 다해서 지는 것이다. 저 꽃을 지게 하는 건 바람이 아니라 밤을 아침으로 바꾸는 시간이다. 시인은 촛불이 켜진 방 안에서, 주렴 밖으로 꽃이 지는 것을 보고 있다. 아니 꽃이 지는 소리를 듣고 있는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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