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의 철학
조병화(1921~2003)
살아가노라면
가슴 아픈 일 한두 가지겠는가
깊은 곳에 뿌리를 감추고
흔들리지 않는 자기를 사는 나무처럼
그걸 사는 거다
봄, 여름, 가을, 긴 겨울을
높은 곳으로
보다 높은 곳으로, 쉼없이
한결같이
사노라면
가슴 상하는 일 한두 가지겠는가
험한 풍파에도 밖으로 내색하지 않고
뿌리에 아픔을 감추고 사는 나무에 대한 우리의 잔상(殘像)이다.
사람처럼 그가 겪은 가슴 아픈 일, 마음 상하는 일이 어디 한 두 가지뿐이었겠는가. 끝내 사람이 닿을 수 없는 40m 높이에서 피어낸 전나무 가지 끝에 걸린 바람의 향기, 생명의 정체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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