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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피에르 드 코사드 / 굴복

오늘의 책 2015. 4. 25. 10:33 Posted by 따시쿵

저자 : 장 피에르 드 코사드 J. P. de Caussade


1675년 프랑스의 남부 케르시 주에서 출생하여 1705년 예수회의 사제로 임명된 뒤 여러 도시에서 학문과 신앙을 가르치다가 1751년 76세로 생을 마감하였다. 그의 존재를 알게 해준 이 책은 코사드의 기도 노트와 여러 사람에게 보낸 그의 편지들과 여러 공동체에서 나눈 대화들이 기록으로 전해지다 책으로 발간되었다. 그의 글은 종파를 떠나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전적인 자기 포기>와 <하나님께 완전한 굴복>이라는 내용을 강조함으로써 출간 이후 곧 프랑스 영적 회복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순종하는 마음


우리가 이렇게 하나님과 동행하며 하나님 안에서 지금 이 순간의 의무를 행하며 살아간다면 우리가 느끼고 행동하는 모든 것에서 초연해야 한다.


이것을 벗어나는 것은 뭐든 불필요한 것으로 무시해야 한다. 방금 지나간 의무나 앞으로 다가올 의무에 대해 생각하지 말고 우리 자신을 현재의 의무에만 제한해야 한다.


물론 나는 당연히 하나님의 법은 항상 당신의 앞에 놓여 있으며 우리가 즐겁게 굴복을 연습하면 우리 영혼 안에 거하시는 하나님의 일하심에 민감해진다고 생각한다.


당신은 마음의 감동을 느끼고 이렇게 말한다. "어쩐지 이 사람에게 자꾸 끌려요"라거나 "어떤 책을 읽거나 어떤 조언을 주고받거나 확신을 받거나 어떤 물건을 치워버리거나 어떤 행동을 하고 싶은 마을이 들어요" 은혜의 영감에서 오는 이런 감동은 곰곰이 생각하거나 이유를 따지거나 미루면서 머뭇거리지 말고 순종해야 한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면 자기 의지가 전혀 끼어들지 않게 이 일에 전념해야 한다. 이런 굴복의 상태에서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 안에 내주하시므로 하나님의 뜻이 우리에게 나타났다고 표현한다.


그분이 계시하신 뜻은 평상시 우리의 의지를 대신해야 한다. 순간마다 행해야 할 의무가 있게 마련이다. 순종하는 영혼은 성실하게 의무에 임한다. 읽거나 들어서 배운 것은 잊혀지지 않으며 가장 단계가 낮은 초심자도 이보다 자신의 의무를 더 잘 이행 할 수는 없다.


이런 이유로 하나님께 굴복한 영혼들이 때로 이 책, 때로는 저 책에 끌리기도 한다. 또는 사소해 보일 수도 있는 상황에 대해 몇 마디 논평을 하거나 소감을 얘기하게 되기도 한다.


어느 순간 하나님은 나중에 자기 의무를 다하는 가운데 그들에게 용기를 줄 무언가를 알게 되도록 인도하신다. 무엇을 하든 그들은 이유는 몰라도 그 일을 하도록 인도받기 때문에 그렇게 행한다. 이 문제에 대한 그들의 설명은 이렇게 요약해 볼 수 있다. "하나님께서 내가 그것을 쓰고, 읽고, 묻고, 조사하라고 인도하시는 느낌이 든다.

 

나는 그 인도하심을 따르며 그렇게 지시하신 하나님은 나중에 나 자신과 다른 이들을 위한 다른 인도의 핵심이 될 일들을 말하자면 내 잠재의식에 비축해 놓으신다." 그래서 바로 이렇게 거의 알아보기 힘들게 "슬쩍 찌르는" 미약한 암시에도 이들이 온유하게 순종하고 복종해야 할 필요가 생긴다.


즐거운 자기 굴복 상태의 유일한 규칙은 현재 이 순간이다. 이 상태에서 우리의 영혼은 깃털처럼 가볍고 물처럼 막힘없이 흐르며 어린아이처럼 단순해서 이런 은혜의 암시에 공이 통통 튀듯 쉽게 움직인다.


그들은 녹여 붓는 금속만큼이나 변함없고 견고하다. 부어지는 거푸집 모양에 따라 금속의 모양이 다양하게 변하는 것처럼 이런 영혼들은 유연해서 하나님이 그들을 위해 택하신 어떤 모양으로든 쉽게 빚어진다. 한 마디로 그들의 성품은 공기를 닮아 불어오는 모든 산들바람에 잘 움직인다.


또 물처럼 어떤 용기에든 부으면 그 모양으로 변해 모든 갈라진 틈을 채운다. 그들은 하나님 앞에 매끄럽게 펼쳐진 화폭 같아서 하나님을 신뢰하는 까닭에 그분이 무엇을 그리고 싶어 하시는지 생각하거나 알려고 애쓰지 않는다.


그들은 자신을 그분께 드려 그분이 시키신 일에 완전히 몰두한 까닭에 자신에 대해서나 그들에게 필요한 것들과 그것을 얻는 방법 따위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게 순전하고 숨겨져 있어 비밀스러우면서도 겉으로는 대단찮아 보이는 그들의 작은 작품에 그들이 더욱 열정적으로 몰두할수록 하나님은 화려한 색으로 작품을 꾸미고 아름답게 만드신다. 사랑과 순종의 매끄러운 화폭 표면에서 그분의 손은 가장 아름다운 도안, 가장 섬세하고 정교한 형태, 가장 거룩한 모양을 그려내신다.


여호와께서 자기를 위하여 경건한 자를 택하신 줄 너희가 알지어다 (시 4:3)


사실 그림 작업에 사용될 매끄럽고 깨끗한 화폭은 매순간 단 한 번의 붓질을 느낄 뿐이다. 망치로 끌을 여러 번 내리치지만 한 번에 생겨나는 흔적은 단 하나이며 되풀이해서 얻어맞는 돌도 그때마다 어떤 모양이 생겨나는지 알거나 보지 못한다. 끌에 깍여 줄어들고 쓸리며 모양이 어그러진다는 것을 느낄 뿐이다.

 

십자가상이나 조각이 되도록 정해진 돌도 자신은 그 사실을 모르지만 만일 "너한테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거지?" 하는 질문을 받았을 때 만일 말할 수만 있다면 이렇게 얘기할 것이다. "제게 묻지 마세요! 제가 아는 건 한 가지 밖에 없습니다.

 

그건 우리 주인의 손에 나를 가만히 맡기고 그분을 사랑하며 제게 행하시는 모든 일들을 다 견디는 거예요. 앞으로 무엇이 될지, 어떻게 그렇게 되는지는 그분이 주관하시는 일입니다. 내가 결국 무엇이 될지 모르듯이 그분께서 내게 어떤 일을 하시는지도 저는 모릅니다.

 

제가 아는 사실은 그분이 하시는 일은 어쨌거나 최선이고 완벽하다는 거예요. 저는 그분이 끌로 저를 새기실 때마다 그것이 제게는 최고의 것이라 여기고 받아들입니다. 비록 실제로는 무너지고 깨어지고 흉해지는 느낌이 들지만요, 이것도 제가 관여할 일은 아닙니다.

 

저는 지금 이 순간에 만족합니다. 저는 이를 넘어서는 생각을 하지 않으며 여기에 대해 알려 하거나 혼자 걱정하지 않고 이 뛰어난 장인이 하시는 작품을 견디고 있습니다."

 

그렇다!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드리고 사랑스럽게 유순하게 그분의 손에 모든 것을 맡기자. 당신의 안팎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이 당신에게는 최선의 것임을 확실히 신뢰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일하시도록 당신 자신을 완전히 하나님께 드려라. 끌이 자기 일을 하고, 날카로운 바늘이 해야 할 일을 하게 하라. 화폭을 더럽히기만 하는 것처럼 보여도 화가의 붓질이 무수한 색조로 화폭을 뒤덮게 하라.

 

온 맘을 다해 지속적으로 복종하며 당신 자신을 잊고 열정을 다해 의무에 전념함으로써 이 모든 하나님의 행하심에 협력하라. 주변의 모든 환경이나 특별히 세부적인 경치들을 모두 알려하지 말고 이렇게 당신 자신에게 주어진 길을 계속 나아가면 한 걸음 한 걸음 어떻게 가야 할지 길이 보일 것이다.

 

사랑과 순종으로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면 그 외의 모든 것을 당신에게 더하시리라. 우리는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고민하면서 걱정스럽게 묻는 것을 본다. "누가 우리를 지도해서 겸손하고 거룩해지며 완덕을 얻도록 하겠는가?" 이런 이들은 책들을 뒤져 이 경이로운 일에 대한 설명과 특징, 본질 따위를 찾게 하라.

 

하지만 당신 만큼은 사랑으로 하나님과 평화롭게 연합한 채 앞을 내다보려 하지 말고 확실하고 올바른 의무의 길을 따라가야 한다. 천사들은 이 어두운 시간 동안 당신 옆에 머무르며 당신을 지켜줄 것이다.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더 많은 것을 요구하신다면 그분의 영감으로 당신에게 이를 알려주실 것이다.

 

 


 

 

시험이 가져오는 행복한 결과


지금까지 묘사한 순수한 믿음의 길 위에서 육체적으로나 영적으로 일어나는 모든 일은 잠시나마 죽음의 일면을 지닌다. 그렇다고 그리 놀랄 까닭은 없다.

 

그것말고 우리가 기대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겠는가? 그것은 이 상태에서는 아주 자연스럽다. 하나님은 각 영혼을 위한 그분만의 계획이 있으시며 죽음이라는 변장 아래 이런 계획은 성공적으로 이행된다.

 

"변장"이라는 용어로 내가 의미하는 것은 신체의 고통과 영적인 약점을 망라한 모든 실패다. 이 모든 것은 성공하여 하나님의 손에서 모두 선으로 바뀐다. 그분이 고상한 계획을 달성하기 위해 준비하는 것은 바로 이렇게 본성에 문제가 되는 이런 것들이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리라

(롬 8:28)

 

그분은 죽음의 그림자로부터 생명을 끌어내시므로 우리의 본성은 두려워하나, 믿음은 모든 것을 최선으로 여기며 용기와 확신에 가득 찬다.

 

하나임의 섭리가 죄를 제외한 모든 만물을 아우르시고 인도하시며 완성하심을 안다면 만물 속에서 하나님을 경배하고 사랑하며 두 팔 벌려 받아들이는 것은 믿음의 의무이다. 

 

바로 그들의 비천함이 오히려 믿음의 승리를 가져오므로 우리는 겉모습이 어떻든  기쁨과 확신을 가지고 모든 일에 전념해야 한다. 이것이 하나님을 영예롭게 하며 그분을 하나님으로 인정하는 길이다.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하나님의 뜻으로 다가오는 매순간 행하고 겪어야 할 모든 일을 맞이해 기쁨과 확신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우리가 수많은 고통과 문제, 어려움, 약함과 실패의 거센 물살에 빠져 휩쓸리게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것은 바로 이 땅에서의 믿음의 삶을 유지하고 생기를 불어넣기 위해서다. 

 

이 모든 일 속에서 하나님을 발견하는 데는 믿음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거룩한 삶은 육체의 죽음, 영혼의 상실로 여져지는 일, 세상사에 존재하는 상실 등 여러 모양을 지니고 매순간 비밀스럽지만 확실하게 우리에게 다가온다.

 

믿음은 이 모든 일들 가운데 자양분과 힘을 발견하다. 믿음은 이것들을 꿰뚫고 나가 생명을 주시는 분, 하나님의 손에 매달린다. 

 

죄에 물들지 않은 모든 것을 통해 신실한 영혼은 확신에 차서 나아가며 모든 상황을 하나님의 휘장이나 변장으로 받아들인다. 우리는 그분의 직접적인 임재에 놀라면서도 동시에 안도한다. 

 

사실 겸손한 자를 위로하시는 이 위대하신 하나님은 황폐함 속에서도 만일 하나님이 일하시게 하고 전적으로 그분께 영혼을 의탁하다면 두려워할 것이 없다는 내적 확신을 영혼에 부여하신다. 

 

우리가 사랑하는 그분의 임재감을 잃어버렸을 때 우리는 슬퍼하지만, 여전히 우리가 그분을 소유하고 있음을 보증하는 무엇이 존재한다. 우리가 마음이 불안하고 어지러울 때도 마음 저 깊은 곳에는 우리를 하나님께 붙들어 매는 보이지 않은 닻이 있다.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 (창 28:16)

 

당신은 하나님을 찾아다니지만, 그분은 어느 곳에나 계신다. 모든 만물이 그분을 선포하며 만물이 당신에게 그분을 전한다. 

 

그분은 당신의 옆에서 동행하며 당신의 주위와 내면에 계신다. 그분이 거기 거하시는데도, 당신은 여전히 그분을 찾는다. 당신이 정말 추구하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자신의 생각일 뿐, 당신은 실제로 하나님을 소유하고 있다! 당신은 완덕을 추구하고 이는 당신에게 다가오는 만물 속에 존재한다. 

 

당신의 괴로움과 행동, 당신을 이끄는 인도가 말하자면 그로 인해 하나님이 당신에게 자신을 내어주시는 신성한 "요소"들인데도, 당신은 숭고한 개념들을 좇아 헛되이 분투한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런 것에 감싸여 당신에게 오지는 않을 것이다.  

 

마르다는 근사한 음식을 만들어 예수님을 기쁘시게 하려고 했지만 마리아는 그분이 자신을 어떤 방식으로 내어주고 싶어하시든 그분과 함께 있는 것으로 만족했다. 

 

하지만 마리아가 예수님께 품은 생각에 따라 동산 무덤 밖에서 그분을 찾았을 때, 그분은 동산지기의 모습으로 나타나셔서 그녀의 시선을 벗어나셨다. 사도들도 예수님을 보았지만, 그들 역시 그분을 유령으로 오해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자신을 감추시고 순전한 믿음의 상태로 영혼을 고양시키시며 모든 종류의 상황 속에서 그분을 발견하는 법을 가르치신다. 

 

우리가 하나님의 이 비밀을 발견하면, 그분은 더 이상 자신을 위장하지 않으신다. 믿음은 이렇게 말한다. "그분은 거기 벽 뒤에 계신다. 그분은 창문에 난 격자를 통해 바라보신다" (캔트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