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 M. 바운즈 / 기도의 능력

오늘의 책 2014. 6. 6. 20:13 Posted by 따시쿵

E. M. 바운즈 (Edward McKendree Bounds)


1835년 8월15일 미주리주 북동부 지역에서 태어난 그는 법정 일을 해온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19살이 되기 전 변호사 시험에 합격했으며, 24살 때까지 변호사로 일했다. 이후 갑작스럽게 선교사의 소명을 느끼고, 존 웨슬리의 설교를 들으며 성경을 읽기 시작했다. 그의 첫 설교는 몬티첼로라는 인근 마을의 조그만 교회에서 이루어졌으며, 1894년 내쉬빌에서 은퇴하기까지 감리교 목사로 사역하였다. 은퇴 후에는 집필, 순회부흥 사역에 힘쓰며 기도에 관한 저서를 남겼다. 그 중 『기도의 능력』과 『부활』은 그가 세상을 떠나기 전에 출간되었고, 다른 책들은 그가 죽고 난 후 바운즈의 제자라 할 수 있는 호머 핫지가 바운즈의 친구인 클로드 칠턴의 도움을 받아 세상에 나왔다. 이렇게 출간된 저서들은 1913년, 그가 세상을 떠나고 100년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전 세계 그리스도인들에게 깊은 감동을 주고 있다. 이것이 그가 '기도의 사람', '기도의 선지자'로 불리우는 이유이다.




하나님의 능력의 통로


우리는 효과적인 복음 전도와 교회 성장 그리고 교인수 증대를 위해 새로운 방법, 새로운 계획, 새호운 조직을 궁리하는 데 끊임없이 신경을 쓰고 있다.


현대의 이런 추세는 사람의 시야를 흐리게 하거나 계획과 조직 속에 사람을 빠뜨리는 경향이 있다. 하나님의 계획은 사람을 중시한다. 다른 무엇보다도 사람을 훨씬 더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다. 사람이 하나님의 방법인 것이다.


교회는 더 나은 방법을 찾고 있지만 하나님은 더 나은 사람을 찾고 계신다. 그리스도의 길을 예비하는 하나님의 게획이 요한이라는 사람에게 달려 있었다. 


하나님꼐로서 보내심을 받은 사람이 났으니 이름은 요한이라  (요 1:6)


한 아이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사 9:6)


온 세상의 구원이 요람에 누인 그 아들로부터 온다. 바울은 세상에 복음을 심은 사람들의 인격적 특성에 호소함으로써 그들의 성공의 비밀을 풀었다. 복음의 영광과 효력은 그것을 선포하는 사람들에세 달려 있다. 하나님꼐서는 


여호와의 눈은 온 땅을 두루 감찰하사 전심으로 자기에게 향하는 자를 위하여 능력을 베푸시나니 (대하 16:9)


라고 하신다. 이를 통해 하나님은 사람의 필요성과, 그분의 능력을 세상에 펴시기 위한 통로로서 사람을 의지하신다는 것을 선포하시는 것이다.


이러한 중차대한 진리는 이 기계 문명의 시대가 잊어버리기 쉬운 것이다. 이 진리를 잊는 것은 하나님의 일을 하는 데 있어서 마치 태턍이 그 궤도를 벗어나는 것과 같이 치명적이다. 그리고 그 결과는 흑암과 혼돈과 죽음이다.

오늘날 교회가 필요로 하는 것은 더 많은 기계나 더 좋은 기계도 아니요, 새로운 조직도 하니요, 기발한 방법고 아니다. 교회가 필요로 하는 것은 성령이 쓰실 수 있는 사람, 즉 기도의 사람, 기도에 능한 사람이다. 성령은 방법을 통해서 흘러나오지 않고 사람을 통해서 역사하신다.성령은 기계에 임하지 않고 사람에게 임한다. 성령은 계획에 기름을 붓지 않고, 사람에세 그것도 기도의 사람에게 기름을 부으신다.


한 훌륭한 역사가는, 국가의 혁신은 민주주의 정치가나 철학적 역사가에 의해서 이루어지기보다는 개인의 인격에 의해 이루어진다고 말했다. 이 진리는 그리스도의 복음에도 전적으로 적용될 수 있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의 인격과 행동이 세계를 기독교화하고, 개인과 국가를 변화시킨다. 복음 전도자들에게는 이것이 더욱 분명한 사실이다.



담겨 있는 질그릇에 따라


복음의 성격과 운명은 설교자에게 달려 있다. 설교자는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주신 메시지를 세우거나 혹은 망친다. 설교자는 하나님의 기름이 통과는 금관(金管)이다. 이 관은 금으로 되어 있어야 할 뿐 아니라 막히지 않아야 하고 흠이 없어야 한다. 그래야 기름이 온전히, 아무 거침없이, 그리고 낭비됨이 없이 흐르게 된다.


사람이 설교자가된다. 하나님께서 그를 만드셔야 한다. 할 수 있으면, 설교자는 메시지보다 나아야 한다. 설교자가 설교보다 더 중요하다. 설교자가 설교를 만든다. 어머니의 가슴에서 나오는 생명을 주는 젖은 바로 어머니의 생명인 것처럼, 모든 설교자들이 말하는 것은 설교자 자신의 인격에 의해 형성되고 물들여진다. 보화가 질그릇 속에 담겨 있다. 그러므로 그릇의 냄새가 보화를 아름답게 할 수도 있고 추하게 할 수도 있다.


설교의 배후에는 설교자가 있다. 설교는 한 시간 동안 하는 공연이 아니다. 설교는 삶이 흘러나오는 것이다. 한 편의 설교를 만드는 데는 20년이 걸린다. 그 사람을 만드는 데 20년이 걸리기 때문이다. 진정한 설교는 삶의 문제이다. 사람이 성숙하면 설교도 성숙한다. 또한 사람이 능력 있으면 설교도 능력이 있다. 사람이 거룩하면 설교도 거룩하다. 사람에게 성령의 기름부으심이 충만하면 설교에도 성령의 기름부으심이 충만하다.


바울은 그것을 "나의 복음"이라고 했다. 그것은 그의 개인적 특성으로 복음을 전락시켰다거나, 복음을 이기적으로 전용함으로써 변질시켰기 떄문이 아니다. 복음이 바울의 가슴속에, 피 속에 들어 있어서 바울의 속성에 의해 인격적인 신뢰가 이루어지고, 그의 불 같은 영혼의 불 같은 능력에 의해 불이 붙여지고 능력이 부어진다는 의미이다.


바울의 설교는 과연 무엇이었는가? 또 그 설교는 어디에 있는가? 영감의 바다 위에 조각조각 떠다니는 마른 뼈들이었다! 그러나 자신의 설교보다도 더 위대했던 사람 바울은 교회를 빚는 그의 손과 함께 변함없이, 온전히, 영원히 살아 있다. 설교는 소리에 불과하다. 소리는 정적 속에 죽고, 본문은 망각되며, 설교는 기억 속에서 사라진다. 그러나 설교자는 살아 있다.


생명을 주는 능력에 있어서 설교가 사람을 능가할 수 없다. 죽은 사람은 죽은 설교를 한다. 그리고 죽은 설교는 영혼을 죽인다. 모든 것이 다 설교자의 영적 특성에 잘려 있다.


거룩함의 천국


율법 시대의 대제사장은 "여호와께 성결"이라고 새긴 흉패를 달았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의 일을 하는 설교자도 모두 이와 동일하게 거룩한 표어에 의해 다듬어지고 다스림을 받아야 한다. 기독교의 사역이 그 성품의 성결함과 목적의 성결함에 있어서 유대 제사장들보다 못하다는 것은 울어 마땅한 수치이다. 조나단 에드워즈는 "나는 더욱 거룩하고 더욱 그리스도를 닮기 위해 열심을 다해 계속 노력했다. 내가 바랐던 천국은 바로 거룩함의 천국이가."라고 했다.


그리스도의 복음은 인기의 물결에 따라 움직이지 않는다. 그것은 스스로 번식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지 않다. 복음은 그것을 밭은 사람이 움직이는 대로 움직인다. 설교자가 복음을 인격화하지 않으면 안 된다. 복음의 신적이고 가장 뚜렷한 특성들이 그 사람에게서 구체화 되어야 한다. 강권하는 사랑의 능력이 설교자 안에 있어서 투사하고, 그러내며, 모든 것을 다스리고, 자기를 잊게 하는 힘이 되어야 한다. 자기를 부인하는 힘이 그의 존재, 그의 심장, 그의 피와 뼈가 되어야 한다. 설교자는 겸손으로 옷입고, 온유 안에 거하며,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같이 순결하며, 어린아이의 천진난만함으로, 왕의 고고함을 지닌 자원하는 종으로 사람들 가운데 나아가야 한다.


설교자는 철저히 자기를 비우는 밉음과 자기를 불태우는 열심으로 사람믈 구원하는 일에 자신을 던져야 한다. 이 세대를 붙들어 하나님을 위한 세개로 만드는 사람은 진실하고 영웅적이며 가슴이 뜨겁고 두려움을 모르는 순교자여야 한다. 만일 그들이 비겁하게 시간이나 떄우는 자이거나 높은 자리나 찾는 자라면, 만일 그들이 사람을 즐겁게 하는 자거나 사람을 두려워하는 자라면, 만일 그들의 믿음 이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에 굳게 붙들지 않는다면, 만일 그들의 자기 부인이 자신이나 세상의 말에 의해 무너진다면, 그들은 하나님을 위해 교회도 세상도 붙들 수 없다.


설교자는 자기 자신을 향하여 가장 날카롭고 가장 강한 설교를 해야 한다. 그는 자기 자신을 향해 가장 어렵고, 까다롭고, 힘들고, 철저한 일을 해야 한다. 열두 제자를 훈련시킨 일은 위대하며, 어렵고 영속적인 그리스도의 일이었다. 설교자는 설교를 만드는 사람이 아니라 사람을 만들고 성도를 만드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스스로를 사람과 성도로 만든 사람만이 이 일을 위해 제대로 훈련된 사람이다.


 가장 강한 무기를 지니라


하나님꼐서 필요로 하는 것은 위대한 재능이나 위대한 학문이나 위대한 설교자가 아니다. 거룩함이 위대한 사람, 믿음이 위대한 사람, 사랑이 위대한 사람, 충성이 위대한 사람, 하나님을 위해 위대한 사람- 강단에서는 항상 거룩한 설교를, 강단 밖에서는 거룩한 생활로 설교하는 사람이다. 그래야만 하나님을 위해 한 세대를 빚을 수 있다.


초대 그리스도인들은 그렇게 되어 있었다. 그들은 천국의 모형을 닯은 견고한 형상의 설교자, 즉 영웅적이고 꿋꿋하고 군사 같으며 성자 같은 설교자들이었다. 그들에게 있어서 설교는 자기를 부인하는 것이요, 자기를 십자가에 못박는 것이요, 심각하고 어렵고 순교하는 일이었다. 그들은 자기 세대를 향해 한 말을 자신에게 적용했고, 그리하여 하나님을 향해 아직 태어나지 않은 세개를 태 안에 품었다.


설교자는 기도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기도는 설교자의 가장 강한 무기이다. 기도는 전능한 힘이 있기에 모든 사람에게 생명과 능력을 준다,


참된 설교는 골방에서 만들어진다. 사람 - 하나님의 사람 - 은 골방에서 만들어진다. 그의 삶과 그의 가장 깊은 확신들은 그와 하나님과의 은밀한 교제에서 태어난다. 그의 영혼이 눈물을 흘리며 힘겹게 고뇌하는 것, 그의 가장 무게 있고 가장 감미로운 설교는 홀로 하나님과 있을 때 얻어진다. 기도는 사람을 만든다, 기도는 설교자를 만든다. 기도는 목사를 만든다.


오늘날의 강단은 기도하는 데 약하다. 학식에 대한 자랑은 겸손히 의뢰하는 기도를 방해한다. 강단에서의 기도는 단지 예배 형식을 같추기 위해 하는 경우가 너무 많다. 현대의 강단에서 기도는 바울의 삷과 사역에 있었던 것 같은 강력한 힘이 되지 못하고 있다. 자신의 삶과 사역에서 기도가 큰 능력이 되지 못하는 설교자는 하나님의 사역에 무능한 자며,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대의를 진보 시키는 일에 무능력한 자이다. 


손기철 / 왕의 기도

오늘의 책 2014. 5. 2. 11:04 Posted by 따시쿵

저 : 손기철


모든 믿는 사람들이 말씀과 성령님을 충만히 받아 하나님나라를 넓혀가는 왕 같은 제사장이자 능력 있는 사역자가 되도록 섬기는 하나님의 사람이다. 성경의 방법대로, 우리가 문제에 봉착할 때에 특별한 사람을 찾지 않더라도 자신이 성령님의 임재 하에 주(主)의 말씀을 믿고 선포함으로써,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누리는 하늘 권세자로 서는 길로 우리를 안내한다. 


그는 조지아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미국 농무성의 ‘러셀 리서치 센터’에서 ‘박사 후 과정’(post-doc.)을 밟았다. 1990년부터 건국대학교 교수로 임용되어 현재 건국대학교 생명환경과학대학 학장으로 재직 중이며, 헤븐리 터치 미니스트리 대표이다. 또 한국창조과학회 이사이자 온누리교회 장로이다. 저서로는 『왕의 기도』, 『왕의 기도 DVD북』, 『고맙습니다 성령님』(규장), 『기름부으심이 넘치는 치유와 권능』(두란노)『알고 싶어요 하나님의 나라』,『알고 싶어요 하나님의 의』등이 있다.




나의 주인께 집을 내어드리다


처음에는 성령님을 잘 모시기 위해 내 마음의 집을 부분적으로 개조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괴롭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결국 내가 성령님이 거하시기에 좋은 집으로 변화되려면 내 마음의 집을 리모델링하는 수준이 아니라 아예 그분이 사시기에 편리하도록 새롭게 재건축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해서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엡 2: 22


내적 치유라는 재건축을 통해 성령님이 거하시기에 아름다운 집이 만들어지면서 내 인생으 목적도 변화했습니다. 내 인생의 목적은 내가 하나님을 위해 열심히 일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그분 안에서 즐거워하고 그분의 아름다운 덕(德)을 선전하는 청지기로 살아 그분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내 집을 내가 가꿀 때는 너무 힘이 들었지만, 내 집을 전부 다 하나님께 넘겨드리고 청지기의 삶, 자존자의 삶이 아닌 전적 의존자의 삶을 살게 되자 내 삶에 참된 기쁨이 찾아오고 근심과 염려가 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가서 다시는 죄를 짓지 않을 수 있는 유일한 조건은 나는 죽고 내 안에 예수님이 들어와 사시는 길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지요. 내 안에 오신 분은 성령님이었습니다. 내가 성령세례를 받고 주(主)의 영과 교제하며, 성령님의 인도함을 따를 때부터 나는 점점 자유롭게 되는 것을 느꼈습니다.


육신을 좇지 않고 그 영을 좇아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롬 8:4


나는 나의 경험과 이성으로 깨달을 수 없는 놀라운 여행을 떠났습니다. 그것은 마치 어릴 때 시골에서 처음 신작로로 걸어 나와 시내에 나간 그런 기분이었습니다. 모든 것이 새롭고 자유로웠습니다. 하나님의 끝없는 사랑 안에서 나를 잊어버렸고, 완전히 새롭게 인도되는 그 기분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아름다웠고, 평온했고, 기쁨이 넘쳤습니다.



난 누구지?


내가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받은 후 내 마음이 영적으로 갈급해서 어찌할 바를 모를 때가 있었습니다. 마시고 또 마셔도 채워지지 않는 영적 갈급함이 내 안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베개를 적시며 잠을 이루지 못한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그런 어느 날 새벽, 눈을 뜨자마자 마치 내가 고아가 된 것 같다는 느낌이 밀려왔습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불을 켜고 책상에 앉아 별다른 생각없이 성격책을 폈습니다. 우연히 눈에 들어 온 마태복음 3장 예수님으 세례식 장면을 읽고 다시 묵상했습니다. 나는 평소에도 그 구절을 읽을 때마다 "예수님은 참 좋으시겠다. 하나님이 그렇게나 사랑하시니......"라고 늘 부러워하곤 했습니다.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 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 하늘에서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

마 3:16,17


하나님은 예수님을 가리켜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그날따라 불현듯 '그러면 나는 누구지?'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으신 아들이요 기뻐하는 자이신데, 그러면 나는 하나님께 어떤 사람인가?' 하는 근본적인 의문이었습니다.


그 순간 나의 깊은 곳으로부터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료 내가 기뻐하는 자라"라는 내면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할렐루야! 나도 하나님의 아들이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이 세례 요한으로부터 세례 받으실 때 들었던 그 음성 그대로, "너는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아들이요 기뻐하는 자라" 라는 음성을 듣자 나는 너무나 감격스러웠습니다.


그날부터 나는 변화되기 시작했습니다. 그중 가장 크게 변한 것은 바로 나의 기도였습니다. 그 전에는 하나님이 나를 기뻐하지 않으시면 어쩌나 싶어 눈치를 보며 기도했다면, 이제는 하나님의 아들로서 당당하게 기도하게 된 것이지요. 그러면서 나의 기도는 점점 예수님이 드린 기도를 닮아가기 시작했습니다.




E. M. 바운즈 / 기도의 심장

오늘의 책 2014. 3. 28. 11:09 Posted by 따시쿵

E. M. 바운즈 (Edward McKendree Bounds)


1835년 8월15일 미주리주 북동부 지역에서 태어난 그는 법정 일을 해온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19살이 되기 전 변호사 시험에 합격했으며, 24살 때까지 변호사로 일했다. 이후 갑작스럽게 선교사의 소명을 느끼고, 존 웨슬리의 설교를 들으며 성경을 읽기 시작했다. 그의 첫 설교는 몬티첼로라는 인근 마을의 조그만 교회에서 이루어졌으며, 1894년 내쉬빌에서 은퇴하기까지 감리교 목사로 사역하였다. 은퇴 후에는 집필, 순회부흥 사역에 힘쓰며 기도에 관한 저서를 남겼다. 그 중 『기도의 능력』과 『부활』은 그가 세상을 떠나기 전에 출간되었고, 다른 책들은 그가 죽고 난 후 바운즈의 제자라 할 수 있는 호머 핫지가 바운즈의 친구인 클로드 칠턴의 도움을 받아 세상에 나왔다. 이렇게 출간된 저서들은 1913년, 그가 세상을 떠나고 100년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전 세계 그리스도인들에게 깊은 감동을 주고 있다. 이것이 그가 '기도의 사람', '기도의 선지자'로 불리우는 이유이다.




위대한 믿음의 능력


기도의 원리와 절차 그리고 기도의 행위와 모험을 논하는 연구라면 반드시 '믿음'부터 다루어야 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와 대화를 나누려는 사람에게 제일 먼저 요구되는 것이 믿음이다. 이런 사람은 자기의 무력함을 뼈저리게 깨닫는 중에 믿음의 손을 내밀어야 한다. 증명할 수 없을 때, 그는 믿어야 한다. 요컨대 우리는 기도를 통해 믿음의 놀라운 특권을 주장한다. 믿음의 무한한 유산遺産을 손에 넣을 수 있는 방법이 기도이다. 우리는 믿음과 기도의 영역에서 똑같이 진실하고 꾸준하게 인내함으로써 진정한 경건을 쌓아나간다. 그러나 기도를 중단한 믿음은 더 이상 살아 있는 믿음이 아니다.


믿음은 불가능한 것을 이룬다. 왜냐하면 믿음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대신해 일하시도록 하는 것이고, 그분은 전능하시기 때문이다. 믿음의 능력이 얼마나 위대한가! 믿음의 능력에는 한계와 제한이 없다! 우리의 마음에서 의심을 몰아내고 불신앙을 추방한다면, 우리가 하나님께 구하는 것이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말씀하신 모든 것을 믿음 있는 자에게 허락하신다.


기도는 믿음을 하나님께 비추고 하나님을 세상에 비춘다. 산을 옮기실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인데, 그분을 움직이는 것은 믿음과 기도이다. 예수님은 무화과나무를 저주 하실 때 자신의 능력을 보여주셨다. 그런 다음 주님은 우리가 믿음과 기도를 통해 놀라운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고 선언하셨다. 물론 이 능력은 죽이는 능력이 아니라 살리는 능력이요, 파괴하는 능력이 아니라 복을 주는 능력이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예수님의 의미심장한 말씀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그 이유는 이 말씀이 믿음과 기도의 문의 쐐기돌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막 11: 24)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라는 이 말씀을 깊이깊이 묵상하라! 이것은 깨닫고 자기 것으로 취하는 적극적으로 쓰는 믿음이다. 이러한 믿음은 하나님을 의식하는 것이요, 그분과의 교제를 체험하는 것이요, 확신을 현실로 바꾸는 것이다.


세월이 흐름에 따라 믿음이 자라거나 아니면 쇠할 수 있는가? 죄악이 넘치고 사랑이 식어가는 오늘날, 믿음이 굳게 설 수 있는가? 종교가 단순히 형식으로 변하고 세속성이 점점 강해지는 상황에서 믿음이 그 능력을 온전히 발휘할 수 있을까? 주님은 "인자人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눅 18:8) 라고 말씀하셨다. 우리는 이 말씀에 무슨 의미가 담겨 있는지 곰곰이 생각해보아야 한다. 우리는 주님이 다시 오실 것을 믿는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분이 예상보다 일찍 오실 것에 대비하여 믿음의 등燈을 손질하고, 그 등불이 계속 타오르도록 관리해야 한다.


믿음은 그리스도인의 인격의 기초이며, 영혼의 안전을 확보하는 원칙이다. 예수님은 베드로가 주님을 부인할 것을 내다 보시고 그 점에 대해 경고하실 때 이렇게 말씀하셨다.


시몬아, 시몬아, 보라 사단이 밀 까부르듯 하려고 너희를 청구하였으나 그러나 내가 너를 위하여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 (눅 22:31, 32)


이 말씀에는 지극히 중요한 진리가 담겨 있다. 주님이 지키기를 원하셨던 것은 바로 베드로의 믿음이었다. 그분은 믿음이 떨어지면 영적 생명도 사라지고 신앙생활의 모든 구조물이 무너진다는 것을 너무 잘 알고 계셨다. 무너지지 않도록 보호를 받아야 했던 것은 바로 베드로의 믿음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주님은 제자의 영혼을 염려하시고, 언제나 응답 받는 기분의 기도를 통해 그의 믿음을 견고케 해 주시기를 원하셨다.


이런 깊은 진리가 베드로의 두 번째 편지에 담겨 있는데, 이 편지에서 그는 은혜 안에서 성장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생활의 안전장치요 열매 맺는 길이라고 가르친다. 그의 말을 들어 보자.


이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공급하라 (벧후 1: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