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호승 - 산산조각

좋은 글귀 2016. 7. 11. 16:48 Posted by 따시쿵

 

 

산산조각

 

                             정 호 승

 

룸비니에서 사온

 

흙으로 만든 부처님이

 

마룻바닥에 떨어져 산산조각이 났다

 

팔은 팔대로 다리는 다리대로

 

목은 목대로 발가락은 발가락대로

 

산산조각이 나

 

얼른 허리를 굽히고

 

무릎을 꿇고

 

서랍 속에 넣어두었던

 

순간접착제를 꺼내 붙였다

 

그때 늘 부서지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불쌍한 내 머리를

 

다정히 쓰다듬어 주시면서

 

부처님이 말씀하셨다

 

산산조각이 나면

 

산산조각을 얻을 수 있지

 

산산조각이 나면

 

산산조각으로 살아갈 수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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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의진 - 마중물

좋은 글귀 2016. 3. 19. 11:29 Posted by 따시쿵



마중물

 

                                      - 임의진

 

우리 어릴 적 작두질로 물 길어 먹을 때

마중물이라고 있었다


한 바가지 먼저 윗구멍에 붓고

부지런히 뿜어대면 그 물이 

땅속 깊이 마중나가 큰물을 데불고 왔다


마중물을 넣고 얼마간 뿜다 보면

낭창하게 손에 느껴지는 물의 무게가 오졌다


누군가 먼저 슬픔의 마중물이 되어준 사람이

우리들 곁에 있다


누군가 먼저 슬픔의 무저갱으로 제 몸을 던져

모두를 구원한 사람이 있다


그가 먼저 굵은 눈물을 하염없이 흘렸기에

그가 먼저 감당할 수 없는 현실을 꿋꿋이 

견뎠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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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석주 - 대추 한 알

좋은 글귀 2015. 5. 18. 10:59 Posted by 따시쿵

 

 

대추 한 알

 

                             장석주
 
저게 저절로 붉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태풍 몇 개
저 안에 천둥 몇 개
저 안에 벼락 몇 개
 
저게 저 혼자 둥글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무서리 내리는 몇 밤
저 안에 땡볕 두어 달
저 안에 초승달 몇 날이 들어서서
둥글게 만드는 것일 게다
 
대추야
너는 세상과 통하였구나


출처  : 『시집:붉디 붉은 호랑이 – 애지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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