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야후이 / 소동파 선을 말하다

오늘의 책 2012. 9. 4. 18:02 Posted by 따시쿵

저자 : 스야후이


중국 사회과학원 대학원, 종교연구소에서 불교전공으로 학위를 받았다. 당송팔대가라 불리는 대문호이자 경학, 서예, 그림, 요리 등 다방면에 걸쳐 최고의 경지에 이른 소동파에게 일찍부터 관심을 갖고 그의 문학과 사상을 연구하고 있다. 불교에 대한 폭넓은 지식과 문학에 대한 깊은 소양으로 이 책을 저술했다.


소동파가 추구했던 선은 중국의 남북조 시대 보리 달마가 인도로부터 들여온 불교의 한 종파이다. 인간의 내면 중시, 지혜의 추구, 욕심을 버린 담박함 같은 특성을 가진 선은 중국 문인들과 끝없는 인연을 맺으며 그들의 정신을 자유로이 날게 했다. 독자들은 소동파가 주선하는 선과의 즐거운 만남을 통해 우리들의 정신 또한 자유로워짐을 느낄 것이다.



소동파 [ 蘇東坡 ] 1037.1.8 ~ 1101.8.24


메이산[眉山:지금의 四川省 眉山市] 출생(景祐 3년 12월 19일). 자 자첨(子瞻), 호 동파거사(東坡居士), 애칭(愛稱) 파공(坡公) ·파선(坡仙), 이름 식(軾). 소순(蘇洵)의 아들이며 소철(蘇轍)의 형으로 대소(大蘇)라고도 불리었다. 


송나라 제1의 시인이며, 문장에 있어서도 당송팔대가(唐宋八大家)의 한 사람이다. 22세 때 진사에 급제하고, 과거시험의 위원장이었던 구양 수(歐陽修)에게 인정을 받아 그의 후원으로 문단에 등장하였다. 


왕안석(王安石)의 ‘신법(新法)’이 실시되자 ‘구법당(舊法黨)’에 속했던 그는 지방관으로 전출되었다. 천성이 자유인이었으므로 기질적으로도 신법을 싫어하였으며 “독서가 만 권에 달하여도 율(律)은 읽지 않는다”고 하였다. 이 일이 재앙을 불러 사상 초유의 필화사건을 일으켜 북송의 수도 카이펑으로 호송되어 어사대(御史臺)의 감옥에 갇히게 되었으며, 이 때 나이 44세였다. 


심한 취조를 받은 뒤에 후베이성[湖北省]의 황주(黃州)로 유배되었으나, 50세가 되던 해 철종(哲宗)이 즉위함과 동시에 구법당이 득세하여 예부상서(禮部尙書) 등의 대관(大官)을 역임하였다. 황태후(皇太后)의 죽음을 계기로 신법당이 다시 세력을 잡자 그는 중국 최남단의 하이난섬[海南島]으로 유배되었다. 


그곳에서 7년 동안 귀양살이를 하던 중, 휘종(徽宗)의 즉위와 함께 귀양살이가 풀렸으나 돌아오던 도중 장쑤성[江蘇省]의 상주(常州)에서 사망하였다.(建中靖國 원년 7월 28일) 그는 폭넓은 재능을 발휘하여 시문서화(詩文書畵) 등에 훌륭한 작품을 남겼으며 좌담(座談)을 잘하고 유머를 좋아하여 누구에게나 호감을 주었으므로 많은 문인들이 모여들었다. 당시(唐詩)가 서정적인 데 대하여 그의 시는 철학적 요소가 짙었고 새로운 시경(詩境)을 개척하였다. 대표작인 《적벽부(赤壁賦)》는 불후의 명작으로 널리 애창되고 있다.




1.

蘇軾 (소식) - 水調歌頭 (수조가두)

                         


明月幾時有 (명월기시유)

把酒問靑天 (파주문청천)

不知天上宮闕 (부지천상궁궐)

今夕是何年 (금석시하년)

我欲乘風歸去 (아욕승풍귀거)

又恐瓊樓玉宇 (우공경루옥우)

高處不勝寒  (고처불승한)

起舞弄淸影  (기무롱청영)

何似在人間  (하사재인간)

轉朱閣低綺戶 (전주각저기호)

照無眠 (조무면)

不應有恨 (불응유한)

何事長向別時圓 (하사장향별시원)

人有悲歡離合 (인유비환이합)

月有陰晴圓缺 (월유음청원결)

此事古難全 (차사고난전)

但願人長久 (단원인장구)

千里共嬋娟 (천리공선연)


밝은 달은 언제부터 있었던가

술잔 잡고 푸른 하늘에 물어본다

천상의 궁궐도 알지 못하리 

오늘 밤은 어느 해인가

나는 바람타고 천상으로 돌아가고 싶지만

경옥 루각 옥집도 두렵기만하고

그 높은 곳의 추위도 이기지 못할까 

일어나 춤추며 내 그림자 희롱하며 노니

인간 세상에 또 이런 곳이 있을까

달은 붉은 누각 돌아

비단 창문에 머물러

밝은 빛 비추니 잠 이루지 못하네

한이 있는 것도 아닌데

왜 이별할 때에는 늘 둥근가 

사람에게는 헤어짐과 만남이 슬프고 기쁘고

달은 둥글고 이지러짐에 따라 밝고 어둡지만

자고로 온전하기 만을 바랄수는 없는 일 

단지 바라는 바는 그 사람 오래토록

천리에 떨어져도 이 아름다움 함께하기를



2.

蘇軾 (소식) - 赤壁賦 (적벽부) 일부


客亦知夫水與月乎 (객역지부수여월호)

逝者如斯 (서자여사)

而未嘗往也 (이미상왕야)

盈虛者-如彼 (영허자여피)

而卒莫消長也 (이졸막소장야)

蓋將自其變者而觀之 (개장자기변자이관지)

則天地 (칙천지)

曾不能以一瞬 (증불 능이일순)

自其不變者而觀之 (자기불변자이관지)

則物與我-皆無盡也 (즉물여아개무진야)


而又何羨乎 (이우하선호) 

且夫天地之間 (차부천지지간)

物各有主 (물각유주)


苟非吾之所有 (구비오지소유)

雖一毫而莫取 (수일호이막취) 

惟江上之淸風 (유강상지청풍)

與山間之明月 (여산간지명월)

耳得之而爲聲 (이득지이위성)

目遇之而成色 (목우지이성색)

取之無禁 (취지무금)

用之不竭 (용지불갈)

是造物者之無盡藏也 (시조물자지무진장야)

而吾與子之所共適 (이오여자지공락)


손님께서도 역시 저 물과 달을 아십니까? (흐르는 물은)가는 것은 이와 같습니다마는 그러나 영원히 흘러가고 마는 것은 아닙니다. (간 것으로 그치는 것은 아닙니다.) 차고 빈 것은 저(달)와 같다지만, 영원히 커지는 것만은 아닙니다.  무릇(대개), 변하는 입장에서 그것을 본다면 곧, 한순간도 변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요,  변하지 않는다는 입장에서 본다면, 이 세상 만물과 내가 영원한 것이니, 또한 무엇을 부러워하겠습니까? 무릇 이 천지 세상에 사물은 각기 주인이 있는 법이니, 만약에 나의 소유가 아니라면, 털끝 하나라도 취해서는 안 될 일입니다. 오직 산위의 밝은 달만이 있어, 귀로 들으면 소리가 되고, 눈으로 보면 그림이 되나니, 취해도 금할 자 없으며, 쓴다 해도 감히 없을 것입니다. 이는 조물주의 한없는 보물이므로 나의 그대가 함께 즐길 것들입니다.



신영복 / 강의 (나의 동양고전 독법)

오늘의 책 2012. 9. 4. 07:48 Posted by 따시쿵

자본주의 체제가 양산하는 물질의 낭비와 인간의 소외, 그리고 인간관계의 황폐화를 보다 근본적인 시각으로 재조명하는 신영복 선생의 동양고전 강의.시경, 서경, 초사, 주역, 논어, 맹자, 노자, 장자, 묵자, 순자, 한비자를 '관계론'의 관점으로 새롭게 읽는다.


이 책은 '관계론'의 관점에서 고전의 의미를 재조명하고 동양적 삶이 지향하는 궁극적인 가치는 '인성의 고양'이며, 이 인성의 내용이 바로 인간관계라는 점을 강조하며 결국 인성을 고양한다는 것은 인간관계를 인간적인 것으로 만들어가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하고 있다. 인(人)은 인(仁)으로 나아가고, 인(仁)은 덕(德)으로 나아가고, 덕은 치국(治國)으로 나아가고, 치국은 평천하(平天下)로 나아간다. 그리고 천하는 도(道)와 합일되어 소요하는 체계로써 인성은 이웃과 함께 만들어가는 것이며 그 시대의 아픔을 주입함으로써 만들어가는 것이고 한 마디로 좋은 사람은 좋은 사회 좋은 역사와 함께 만들어가는 것이라고 이야기 한다. 



Shin, Young-Bok,申榮福

우리 시대 대표적인 진보 지식인. 1941년 경상남도 밀양에서 출생했다. 서울대 경제학과와 대학원을 졸업한 후 숙명여대와 육군사관학교에서 경제학을 가르쳤다. 육사에서 교관으로 있던 엘리트 지식인이었던 신영복 교수는 1968년 통일혁명당 사건으로 무기징역형을 받고 대전 · 전주 교도소에서 20년간 복역하다가 1988년 8 ·15 특별 가석방으로 출소했다.







1.

지(知)와 애(愛)는 함께 이야기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사랑하지 않는 것도 알 수 있다는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애정 없는 타자와 관계없는 대상에 대하여 알 수 있다는 환상을 버려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인간에 대한 이해가 진정한 의미의 지(知)라는 사실입니다. 엄청난 정보의 야적(野積)은 단지 인식의 혼란에 그치지 않고 인간에 대한 이해와 애정을 거추장스러운 것으로 폄하하게 합니다. 더구나 자본주의 사회는 모든 사람이 '팔기 위해서' 진력하고 있는 사회입니다. 모든 것을 파는 사회이며, 팔리지 않는 것은 가차없이 폐기되고 오로지 팔리는 것에만 몰두하는 사회입니다. 상품가치와 자본논리가 지배하는 사회입니다. 이러한 체제에서 추구하는 지식은 인간에 대한 이해와는 한 점의 인연도 없습니다. 지(知)는 지인(知人)이라는 의미를 칼같이 읽는다면, 인간에 대한 이해가 없는 사회는 무지(無知)한 사회입니다. 무지막지(無知莫知)한 사회입니다. 



2.

鄭知常(정지상) - 送人(송인)


雨歇長堤草色多  우헐장제초색다

送君南浦動悲歌  송군남포동비가

大同江水何時盡  대동강수하시진

別淚年年添綠波  별루년년첨록파



비 개인 긴  강둑에는 풀빛 더욱 새로운데

남포에서 이별의 슬픈 노래 그칠 날 없구나.

대동강 강물 언제나 마르랴

해마다 이별의 눈물 물결 위에 뿌리는데



3. 

불편함은 정신을 깨어 있게 합니다.


無逸(무일)


周公曰嗚呼 (주공왈오호)

君子所其無逸 (군자소기무일)

先知稼穡之艱難 (선지가색지간난)

乃逸 (내일)

則知小人之依 (칙지소인지의)

相小人 (상소인)

厥父母勤勞稼穡 (궐부모근노가색)

厥子乃不知稼穡之艱難 (궐자내부지가색지간난)

乃逸 (내일)

乃諺 (내언)

旣誕 (기탄)

否則侮厥父母 (부칙모궐부모)

曰昔之人無聞知 (왈석지인무문지)


군자는 무일(無逸, 편안하지 않음)에 처해야 한다. 

먼저 노동의 어려움을 알고 그 다음에 편안함을 취해야 비로소 백성들이 무엇을 의지하여 살아가는가(小人之依)를 알게 된다. 그러나 오늘 날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건대 그 부모는 힘써 일하고 농사짓건만 그 자식들은 농사일의 어려움을 알지 못한 채 편안함을 취하고 함부로 지껄이며 방탕 무례하다. 그렇지 않으면 부모를 업신여겨 말하기를, 옛날 사람들은 아는 것이 없다고 한다.

     


4. 

부끄러움을 아는 사회


子曰 道之以政 齊之以刑 民免而無恥

道之以德 齊之以禮 有恥且格


이 글은 덕치주의(德治主義)의 선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행정명령으로 백성을 이끌어 가려고 하거나 형벌로써 질서를 바로 세우려 한다면 백성들은 그러한 규제를 간섭과 외압으로 인식하고 진심으로 따르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될 수 있으면 처벌받지 않으려고 할 뿐이라는 것이지요. 그뿐만 아니라 부정을 저지르거나 처벌을 받더라도 그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이와 반대로 덕으로 이끌고 예로 질서를 세우면 부끄러움도 알고 질서도 바로 세게 된다는 것입니다.


형(刑)과 예(禮)를 인간관계라는 관점에서 조명해보는 것입니다. 사회의 지배 계층은 예로 다스리고 피지배 계층은 형으로 다스리는 것이 주나라 이래의 사법(司法) 원칙이였습니다. 형불상대부(刑不上大夫) 예불하서인(禮不下庶人)이지요.



5. 

신뢰를 얻지 못하면 나라가 바로 서지 못한다


子貢問政 子曰 足食 足兵 民信之矣

子貢曰 必不得已而去 於斯三者何先 曰 去兵

子貢曰 必不得已而去 於斯二者何先 曰 去食

自古皆有死 民無信不立


이 구절은 정치란 백성들의 신뢰를 얻는 것이며 백성들의 신뢰가 경제나 국방보다 더 중요하다는 것을 천명하는 구절입니다. 공자가 국가 경영에 있어서 신(信)을 가장 중요한 것으로 천명한 까닭은 물론 그 기능적 측면을 고려해서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당시에는 국경 개념이 없었기 때문에 신뢰를 얻으면 백성들은 얼마든지 유입될 수 있었지요. 그리고 백성이 곧 식(食)이고 병(兵)이었습니다.


이처럼 백성들의 신뢰는 부국강병의 결정적 요체인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논어] 의 이 대화의 핵심은, 정치란 무엇인가라는 보다 근본적인 물음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진秦나라 재상으로 신상필벌(信賞必罰)이라는 엄격한 법가적 개혁의 선구자로 알려진 상앙에게는 '이목지신(移木之信)'이란 유명한 일화가 있지요. 상앙은 진나라 재상으로 부임하면서 나라의 기강이 서지 않는 이유는 바로 나라에 대한 백성들의 불신에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대궐 남문 앞에 나무를 세우고 방문(榜文)을 붙였지요. " 이 나무를 옮기는 사람에게는 백금(百金)을 하사한다." 옮기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상금을 천금(千金)으로 인상하였지요. 그래도 옮기는 자가 없었어요. 그래서 다시 상금을 만금(萬金)으로 인상했습니다. 어떤 사람이 상금을 기대하지도 않고 밑질 것도 없으니까 장난삼아 옮겼습니다. 그랬더니 방문에 적힌 대로 만금을 하사하였습니다. 그 이후로 나라의 정책이 백성들의 신뢰를 받게 되고 진나라가 부국강병에 성공하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6.

참된 지知는 사람을 아는 것


樊遲問仁 子曰 愛仁 問知 子曰 知人


[논어]에 인仁에 대한 공자의 답변은 여러 가지입니다. 묻는 사람에 따라 각각 다른 대답을 하고 있습니다. 안연顔淵에게는 인이란 자기(私心)를 극복하고 예禮로 돌아가는 것(克己復禮)이라고 답변하였고 중궁仲弓에게는 자기가 원치 않는 것을 남에게 하지 않는 것(己所不欲勿施於人)이라고 답변하는가 하면, 사마우司馬牛에게는 인이란 말을 더듬는 것(其言也訒)이라고 대답하기도 합니다. 이처럼 인의 의미는 특정한 의미로 단정하기 어렵습니다. 그때그때의 상황에 따라 적절한 대답을 공자는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인仁을 애인愛人 즉 남을 생각하는 것이라고 하는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번지樊遲는 공자가 타고 다니는 수레를 모는 마부입니다. 늘 공자를 모시는 사람입니다. 물론 제자입니다. 번지에게 인의 의미를 애인으로 이해시키려고 한 어떤 특별한 이유가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자료가 없습니다.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것은 위의 여러 가지 답변에 공통되는 점이 타인과의 관계라는 사실입니다. 극기복례克己復禮는 공公과 사私의 관계를 이야기하는 것이며, '기소불욕己所不欲 물시어인勿施於人'은 나己와 남人의 관계를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사마우에게 이야기한 인이란 "말을 더듬는 것입니다"(其言也訒)라고 하는 경우는 더욱 철저합니다.인이란 말을 더듬는 것이라고 하는 까닭은 "자기가 한 말을 실천하기가 어려우니 어찌 말을 더듬지 않겠는가"(爲之難 言之得無訒乎) 하는 것입니다. 자기가 한 말은 다른 사람과의 약속이라는 뜻입니다. 이 역시 나와 타인의 관계에 대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7.

정직한 방법으로 얻은 부귀

 

子曰 富與貴 是人之所欲也 不以其道得之 不處也

貧與賤 是人之所惡也 不以其道得之 不去也

 

부귀는 사람들이 바라는 것이지만 정당한 방법으로 얻는 것이 아니면 그것을 누리지 않으며, 빈천은 사람들이 싫어하는 것이지만 정당한 방법이 아니면 그것으로부터 벗어나지 않는다.

 

 

 

8.

이론과 실천의 통일

 

子曰 學而不思則罔 思而不學則殆

 

"학學하되 사思하지 않으면 어둡고, 사思하되 학學하지 않으면 위태롭다"

사는 생각이나 사색의 의미가 아니라 실천의 의미로 읽어야 합니다. 그것이 무리라고 한다면 경험적 사고로 읽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학이 보편적 사고라면 사는 분명 자신의 경험을 중심으로 하는 과거의 실천이나 그 기억 또는 주관적 관점을 뜻하는 것이라고 읽어야 옳다고 생각합니다.


경험과 실천이 가장 결정적인 특징은 현장성現場性입니다. 그리고 모든 현장은 구체적이고 조건적이며 우연적입니다. 한마디로 특수한 것입니다. 따라서 경험지經驗知는 보편적인 것이 아닙니다. 학學이 보편적인 것(generalism)임에 비해서 사思는 특수한 것(specialism)입니다. 따라서 '학이불사즉망'의 의미는 현실적 조건이 사상捨象된 보편주의적 이론은 현실에 어둡다는 의미입니다.

최치원 선집 / 새벽에 홀로 깨어

오늘의 책 2012. 8. 21. 11:58 Posted by 따시쿵

최치원


최치원(崔致遠, 857~?)은 유교∙불교∙도교에 이르기까지 깊은 이해를 지녔던 학자이자 뛰어난 문장가였다. 하지만 높은 신분제의 벽에 가로막혀, 자신의 뜻을 현실정치에 펼쳐보이지 못하고 깊은 좌절을 안은 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버렸다. 그가 이룩한 학문과 문장의 경지는 높았으나, 난세를 산 그의 삶은 그가 이룩한 높은 경지만큼 불행했다.


신라 말의 문장가 · 학자. 경주 사량부(沙梁部, 혹은 本彼部) 출신.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고운(孤雲) · 해운(海雲). 견일(肩逸)의 아들이다. 신라 골품제에서 6두품(六頭品)으로 신라의 유교를 대표할 만한 많은 학자들을 배출한 최씨가문 출신이다. 특히, 최씨가문 가운데서도 이른바 '신라 말기 3최(崔)'의 한 사람으로서, 서로 성장하는 6두품 출신의 지식인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인물이었다.


세계(世系)는 자세히 알 수 없으나, 아버지 견일은 원성왕의 원찰인 숭복사(崇福寺)의 창건에 관계하였다. 최치원이 868년(경문왕 8)에 12세의 어린 나이로 중국 당나라로 유학을 떠나게 되었을 때, 아버지 견일은 그에게 “10년 동안에 과거에 합격하지 못하면 내 아들이 아니다.”라고 격려하였다 한다. 이러한 이야기는 뒷날 최치원 자신이 6두품을 ‘(得難)’ 이라고도 한다고 하여 자랑스럽게 말하고 있었던 점과 아울러 신흥가문출신의 기백을 잘 나타내주고 있다.


당나라에 유학한 지 7년 만인 874년에 18세의 나이로 예부시랑(禮部侍郎) 배찬(裵瓚)이 주관한 빈공과(賓貢科)에 합격하였다. 그리고 2년간 낙양(洛陽)을 유랑하면서 시작(詩作)에 몰두하였는데, 그때 지은 작품이 《금체시(今體詩)》 5수 1권, 《오언칠언금체시(五言七言今體詩)》 100수1권, 《잡시부(雜詩賦)》 30수 1권 등이다. 그 뒤 876년(헌강왕 2) 당나라의 선주(宣州) 표수현위(漂水縣尉)가 되었다. 이때 공사간(公私間)에 지은 글들을 추려 모은 것이 《중산복궤집(中山覆簣集)》 1부(部) 5권이다. 그 뒤 887년 겨울 표수현위를 사직하고 일시 경제적 곤란을 받게 되었으나, 양양(襄陽) 이위(李蔚)의 문객(門客)이 되었고, 곧이어 회남절도사(淮南節度使) 고변(高駢)의 추천으로 관역순관(館驛巡官)이 되었다.


그러나 문명(文名)을 천하에 떨치게 된 것은 879년 황소(黃巢)가 반란을 일으키자 고변이 제도행영병마도통(諸道行營兵馬都統)이 되어 이를 칠 때 고변의 종사관(從事官)이 되어 서기의 책임을 맡으면서부터였다. 그 뒤 4년 간 고변의 군막(軍幕)에서 표(表) · 장(狀) · 서계(書啓) · 격문(檄文) 등을 제작하는 일을 맡게 되었다. 그 공적으로 879년 승무랑 전중시어사내공봉(承務郎殿中侍御史内供奉)으로 도통순관(都統巡官)에 승차되었으며, 겸하여 포장으로 비은어대(緋銀魚袋)를 하사받았으며, 이어 882년에는 자금어대(紫金魚袋)를 하사받았다. 고변의 종사관으로 있을 때, 공사간에 지은 글이 표 · 장 · 격(檄) · 서(書) · 위곡(委曲) · 거첩(擧牒) · 제문(祭文) · 소계장(疏啓狀) · 잡서(雜書) · 시 등 1만여 수에 달하였는데, 귀국 후 정선하여 《계원필경(桂苑筆耕)》 20권을 이루게 되었다. 이 가운데 특히 〈토황소격(討黃巢檄)〉은 명문으로 이름이 높다. 


885년 귀국할 때까지 17년 동안 당나라에 머물러 있었는데, 그 동안 고운(顧雲) · 나은(羅隱) 등 당나라의 여러 문인들과 사귀어 그의 글재주는 더욱 빛나게 되었다. 이로 인하여 《당서(唐書)》 예문지(藝文志)에도 그의 저서명이 수록되게 되었는데, 이규보(李奎報)는 《동국이상국집》 권22 잡문(雜文)의 〈당서에 최치원전을 세우지 않은데 대한 논의(唐書不立崔致遠傳議)〉에서 《당서》 열전(列傳)에 최치원의 전기가 들어 있지 않은 것은 중국인들이 그의 글재주를 시기한 때문일 것이라고까지 말하고 있다.





새벽 풍경

바람도 산마루 보드라운 구름 차마 못 흩고 

햇볕도 언덕머리 푹 쌓인 눈 녹이지 못하네.

홀로 풍경 읊으니 이 마음 아득한데 

바닷가 갈매기와 쓸쓸히 벗하네.




곧은 길 가려거든


어려운 때 정좌(正坐)한 채 장부 못 됨을 한탄하나니


나쁜 세상 만난 걸 어찌 하겠소.


모두들 봄 꾀꼬리의 고운 소리만 사랑하고


가을 매 거친 영혼은 싫어들 하오.


세파 속을 헤매면 웃음거리 될 뿐


곧은 길 가려거든 어리석어야 하지요.


장한 뜻 세운들 얻다 말하고


세상 사람 상대해서 무엇 하겠소.




혼자 사는 중에게


솔바람 소리 빼곤 귀가 시끄럽지 않은 


흰 구름 깊은 곳에 띠풀로 지붕을 지었네


세상 사람 여길 알면 한스러우리


돌 위의 이끼가 발자국에 더럽혀질 테니.




가슴속 생각을 적다


세상만사 어지럽게 얽혀 있고


근심과 즐거움 또한 다단(多端)하려라.


부자도 만족하지 않는 듯하니


가난한 자가 어찌 안분자족(安分自足)을 하리.


통달한 이라야 영예를 버리고


초현히 홀로 올바로 보지.


누가 말했나, 허리 굽히는 일 부끄러워


산수간(山水間)에 일찍 들어가겠노라고.


힘써 농사지으면 또한 거두는 게 있어


기한(飢寒)은 거의 면할 수 있지.


평지에서도 풍파가 일고


평탄한 길에서도 험난한 일 생기네.


세상과의 사귐 사절했으니


세상 일이 어찌 나를 괴롭히겠나.


농부가 때때로 찾아오나니


농사일 이야기하다 웃기도 하네.


가고 나면 산에 지는 해를 요량해


고용히 사립문을 닫네.


지음(知音)이야 세상에 하나 없지만


아서라, 한탄해 무엇 하겠나.




피리 소리를 듣고


인생사란 흥했다 쇠하게 마련이니


부질없는 삶 참으로 슬프구나.


뉘 알았으리, 저 천상의 곡조


이 바닷가에서 연주하게 될 줄을.


물가의 전각(殿閣)에서 꽃구경하실 때 연주했었고


바람 부는 난간에서 달 보실 때 연주했었지.


이제는 선왕을 뵐 수 없으니


그대 좇아 눈물만 줄줄 흘리네.




멀리 타향살이 하는 사람의 심정을 잘도 표현했고, 당시 시대상으로 사회에 변혁을 이룰 수 없어서 막막해 하는 그래서 산천을 소요(逍遙)하는 한 선비의 모습을 엿볼수 있는 책 내용이다. 그리고 시, 산문, 창작글을 따로 단락을 두어서 읽는 사람들이 편하게 읽게 구성이 되었다.

시조나 한문에 대한 이해도가 낮고 옛조상들에 대한 생활상을 모르는 상태에서도 이책은 자세한 설명을 붙여줌으로써 이해도를 높였다.

천재라는 단어를 항상 수식어처럼 달고 사람도 범부(凡夫)와 같이 고뇌하고 범민하는구나. 아니 일반 사람보다 더 많은 생각을 하는구나. 이책은 그런 내용을 전달하고 있다.



하늘을 보니.....

일상다반사 2012. 7. 26. 12:01 Posted by 따시쿵

 

 

1.

언제부터인지 하늘을 자주 올려보는 버릇이 생겼다.

먹구름의 하늘, 맑은 하늘, 우중충한 하늘, 비오기 직전의 하늘, 소나기가 오는 하늘, 태양이 작열하는 하늘 등 여러가지 모양으로 변하는 하늘 보는 것을 좋아하게 되었다.

 

하늘을 보고 있으면 기분이 좋아지고 우울한 일이 있으면 하늘만 봐도 언제 그랬냐는듯이 한껏 업된 상쾌한 기분이 든다.

 

요즘에는 회사일로 새벽에 나와서 저녁 늦게 집에 들어가는 횟수가 많다보니 가족들 얼굴 볼 시간도 없다. 그래도 사랑하는 행복와 장난꾸러기 아들, 사랑하는 아내가 있기에 별보기 운동을 해도 그냥 좋다.

 

오늘은 강아지 중성화 수술하는 날인데 잘 되어서 빨리 회복되기를 바란다.

 

사랑한다. 행복아~~~~~

 

2.

改造命運心想事成 (개조명운심상사성) : 운명을 바꾸어 마음먹은 일을 이룬다.

 

어린 시절, 위와 같은 좋은 문구를 만나게 되면 스스로가 세상을 개척해서, 혹은 열심히 살아서 자기 운명은 자기가 개발하는 것이라는 섣부른 결론을 내리곤 했다. 근데 나이가 들어서 같은 문구를 보는데 예전에 가졌던 의미가 아님을 알았다.

 

사람마다 같은 문구를 받아들이는 느낌과 해석은 개인마다 다르겠지만, 내가 생각하는 위 문구의 해석은 [운명을 개조하기 위해서 맘 속에 굳게 다짐하면 이루어진다] 란 말이 옳을 것이다. 그 후에 내가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 누군가가 만들어 주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단지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맘 속에 옳은 생각을 가지고 굳은 결심으로 열심히 사는 것 뿐.

 

난 이제야 알았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열심히 순간순간을 사는 것과 기도로 하루를 시작하고 마무리 할 수 있다는 것을.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라는 것을 알았다.

 

너무나도 단순한 진리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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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나는 최우수상!!!

일상다반사 2012. 7. 2. 19:17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드뎌.....한건 했다. 어미의 우월한 유전자가 이제야 빛을 발하기 시작핝 것이다. ㅋㅋㅋ

'개성으로 다녀 온 수학여행'이라는 제목으로 쓴 글짓기가 학년 최우수상에 뽑혀서 교장선생께 직접 상장을 받았단다.

그까이꺼, 누구나 다 받는거다 하겠지만 나도 그렇고 아이도 그렇고 '째지는 기분'을 감추긴 싫다.

비록 오늘 PELT의 결과가 제대로 죽 쒔다고 나오긴 했지만 뭐 어떠랴, 조선백성 조선말 잘 해야 하는 것이 당연하기에 오늘 상장과 영어시험 점수를 퉁치는 것으로 하련다.

암껏도 아닌 상장 한 장이지만, 나는 오늘 '완전 째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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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봉승 / 조선 정치의 꽃 정쟁

오늘의 책 2012. 6. 29. 09:02 Posted by 따시쿵

신봉승(辛奉承)


1980년대 만 8년 동안 MBC TV를 통해 방영된 대하사극 ‘조선왕조 500년’을 비롯하여, ‘왕조의 세월’ ‘한명회’ 등 숱한 히트작을 발표하며 역사드라마의 현장을 지켜온 한국의 대표 극작가. 시인, 소설가, 문학평론가 등 다양한 장르에서 활동해온 그는 철저한 고증을 거친 작품으로 대중에게 역사의식을 불어넣어 왔다.

 

1933년 강릉 출생으로 강릉사범, 경희대 국어국문학과 및 동 대학원을 졸업하였다. 「현대문학」에 시·문학평론을 추천받아 문단에 나왔다. 한양대·동국대·경희대 강사, 한국시나리오작가협회 회장, 대종상·청룡상 심사위원장, 공연윤리위원회 부위원장, 1999년 강원국제관광EXPO 총감독 등을 역임하였다. 현재 대한민국예술원 회원, 추계영상문예대학원 석좌교수로 재직 중이다.

 

한국방송대상, 대종상, 청룡상, 아시아영화제 각본상, 한국펜문학상, 서울시문화상, 위암 장지연상, 대한민국예술원상, 등을 수상하였고, 보관문화훈장을 받았다. 저서로는『대하소설 조선왕조 5백년』(전 48권), 『소설 한명회』(전 7권), 『이동인의 나라』등의 역사소설과 역사에세이『양식과 오만』, 『신봉승의 조선사 나들이』, 『역사 그리고 도전』(전 3...1980년대 만 8년 동안 MBC TV를 통해 방영된 대하사극 ‘조선왕조 500년’을 비롯하여, ‘왕조의 세월’ ‘한명회’ 등 숱한 히트작을 발표하며 역사드라마의 현장을 지켜온 한국의 대표 극작가. 시인, 소설가, 문학평론가 등 다양한 장르에서 활동해온 그는 철저한 고증을 거친 작품으로 대중에게 역사의식을 불어넣어 왔다.

 

1933년 강릉 출생으로 강릉사범, 경희대 국어국문학과 및 동 대학원을 졸업하였다. 「현대문학」에 시·문학평론을 추천받아 문단에 나왔다. 한양대·동국대·경희대 강사, 한국시나리오작가협회 회장, 대종상·청룡상 심사위원장, 공연윤리위원회 부위원장, 1999년 강원국제관광EXPO 총감독 등을 역임하였다. 현재 대한민국예술원 회원, 추계영상문예대학원 석좌교수로 재직 중이다.

 

 

 

역사책을 읽는 것은 과거가 현재와 미래에도 재현되기 때문이다.

그러키 때문에 과거를 암으로써 현재를 재조명할 수 있고, 과거의 공과功過를 가려서 계승 발전 시킬 것과 단절시켜야 할 것들의 옥석을 가릴 수가 있다.

 

 

신봉승 작가의 책은 딱딱하지 않은 필체와 유려한 내용 구성으로 책을 읽는 순간 재미가 솔솔 나온다는 것이다. 역사책이라고 하면 흔히 알고 있는 시간적인 사건 구성과 등장 인물들의 딱딱한 캐릭터 선정으로 지루할 수 있는 부분을 흔히 알고 있는 소설책 수준으로 글 전개를 하면서도, 사실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강한 임펙트를 독자에게 전달하려고 한 부분이 맘에 든다.

  

예나 지금이나 정치라고 하면 파벌 싸움인 것만은 명백한 사실인 것 같다.

책 내용중에 다음의 두 구절은 전체적인 맥락에 맞는 글귀라 생각이 들어 포스팅한다.

 

 

 

군자君子는 군자와 더불어 도道를 함께하고 붕朋을 이루며

소인小人은 소인끼리 이利를 같이하여 붕朋을 이루니,

군주가 소인의 위붕僞朋을 물리치고 군자의 진붕眞朋을 쓴다면

천하가 잘 다스려질 것이다

                                            - 구양수 <붕당론> 

 

 

 

영조대왕이 탕평비에 적었다는 공자의 [논어]論語 위정편爲政篇에 실린 글귀다.

 

두루 통하여 편벽하지 않는 것이 군자의 공정한 마음이요, 周而不比 乃君子之公心
편벽하여 두루 통하지 않는 것이 소인의 사사로운 마음이다. 比而不周 寔小人之私意

 

아들이 아프다.....

일상다반사 2012. 6. 18. 14:51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튼튼 씩씩의 대명사 우리 아들, 며칠 전 만나지 않아도 될 '병떼'를 만나 시방 무지 고생중이다.

오래된 감기가 임파선으로 번지더니, 급기야 대상포진에 바이러스성 장염, 보너스로 위염까지....아주 '계탔다'.

먹지도 못하고 그나마 먹는건 다 토하고, 사흘 새 4kg이나 살이 내린 아들은 핸섬하긴 하지만 핏기 없어진 얼굴이 짠해 가슴아파 죽을지경이다.

건강은 잃고나서야 그 소중함을 안다. 나 역시 온전한 몸뚱아리가 아니기에 참으로 참으로 지극걱정인데, 아들녀석마저 학교도 못 갈 지경으로 아프니 무참한 심정 아득하기만 하다.

싸우면 무조건 이겨야 하는 것이 나의 철칙이고 규칙이다. 튀어나온 주둥이까지 나를 쏙 빼닮은 아들녀석도 분명 이 '병떼' 들과 싸워 이길 것이다. 이겨라! 이겨라! 우리 아들 이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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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도현 - 너에게 묻는다

좋은 글귀 2012. 5. 31. 16:41 Posted by 따시쿵

 

 

너에게 묻는다

 

안도현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연탄 한 장


                       안도현

 

또 다른 말도 많지만
삶이란
나 아닌 그 누구에게
기꺼이 연탄 한장 되는 것

방구들 선득선득 해지는 날부터 이듬해 봄까지
조선 팔도 거리에서 제일 아름다운 것은
연탄차가 부릉 부릉
힘쓰며 언덕길 오르는 거라네
해야 할일 이 무엇인가를 알고 있다는 듯이
연탄은, 일단 제몸에 불이 옮겨 붙었다 하면
하염없이 뜨거워지는것
매일 따스한 밥과 국물 퍼먹으면서도 몰랐네
온몸으로 사랑하고 나면
한덩이 재로 쓸쓸하게 남는게 두려워
여태껏 나는 그 누구에게 연탄 한장도 되지 못하였지

생각하면
삶이란
나를 산산이 으깨는 일
눈내려 세상이 미끄러운 이른 아침에
나 아닌 그 누가 마음놓고 걸어갈
그 길을 만들 줄도 몰랐네. 나는
 

 

 

 

반쯤 깨진 연탄

 

                       안도현

 

언젠가는 나도 활활 타오르고 싶을 것이다
나를 끝 닿는 데까지 한번 밀어붙여 보고 싶은 것이다
타고 왔던 트럭에 실려 다시 돌아가면
연탄, 처음으로 붙여진 나의 이름도
으깨어져 나의 존재도 까마득히 뭉개질 터이니
죽어도 여기서 찬란한 끝장을 한번 보고 싶은 것이다
나를 기다리고 있는 뜨거운 밑불 위에
지금은 인정머리 없는 차가운, 갈라진 내 몸을 얹고
아래쪽부터 불이 건너와 옮겨 붙기를
시간의 바통을 내가 넘겨 받는 순간이 오기를
그리하여 서서히 온몸이 벌겋게 달아오르기를
나도 느껴보고 싶은 것이다
나도 보고 싶은 것이다


모두들 잠든 깊은 밤에 눈에 빨갛게 불을 켜고
구들장 속이 얼마나 침침한지 손을 뻗어보고 싶은 것이다
나로 하여 푸근함 잠 자는 처녀의 등허리를
밤새도록 슬금슬금 만져도 보고 싶은 것이다.  

 

 

안도현 시인의 '너에게 묻는다' 부터 연관된 시들을 같이 올려본다.

머리를 깨치는 방법은 많은 말과 화려한 수식어가 있는 문장보다 짧지만 강한 인상을 남기는 몇줄이 더 효과적일 때가 있다. 바로 이 시를 두고 한 말일 것이다.


신영복 선생의 [나의 동양고전 독법 - 강의] 책의 무일(無逸)편에 '불편함이야말로 우리의 정신을 깨어 있게 하는 것이라는 깨달음이 없는 것이지요. 살아간다는 것이 불편한 것이고, 살아간다는 것이 곧 상처받는 것이다' 라는 문맥과 일맥상통하는 내용이다.


나는 살면서 누군가에게, 아니 가장 가까운 부인이나 남편, 아이들에게 아낌없이 주는 나무였는지 자문자답을  해 보면 심히 부끄럽다. 나에게 묻는 질문치고는 답변이 궁색하다. 


'삶이란 나 아닌 누군가에게 기꺼이 연탄 한장 되는 것' 깊이 맘속에 간직하면서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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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식구 들어온 날

일상다반사 2012. 5. 23. 11:59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새 식구가 왔다.

행복이. 생후 40일가량. 성별 male. 견종 mix. 확인되지 않은 바에 의하면 포메라니안의 혈통을 5% 정도 보유하고 있다는데, 며느리도 모를 일이다.

혈통 따위가 머시가 중요하랴. 최고 학부를 나왔다는 인간들도 개보다 못한 것들이 넘쳐나는 세상에, 우리집 행복이는 그 어느 인간보다도 순수하고 깨끗한, 그야말로 '천사 개(개 천사?)' 되시겠다.

처음 데려 올 때는 그리 예쁜 줄 몰랐는데 씻겨놓고 며칠 데리고 있어 보니 이녀석, 정말 예쁘다. 생김이 예쁜게 아니라 하는 짓이 예쁘다.

인기척에 따라 예민하게 반응하지도 않고, 제 할 일(잠자기, 똥싸기)만 묵묵히 하고 있다. 외려, 사람들이 녀석을 아는 체 해줘야 한다. 완전 chic하다. 딱 우리 가족이다.

자가접종으로 1차 접종을 마쳤다. 앞으로 먹여야 할 약도 많고 놔 줘야 할 주사도 많다. 두루두루 잘 이겨낼 것이라 믿는다. 왜냐, 우리 식구니까. 잡초만큼 강하고 질긴 우리 식구니까.

가족들 모두 이녀석 행복이 덕분에 새로운 활기가 생겼다. 기도하면서 먹이 먹는 강아지는 몇 안될거다. 우리 행복이는 기도로 크는 강아지니깐 아무쪼록 건강하게 무럭무럭 잘 컸으면 좋겠다.

예쁜 가족을 예비하시고 주신 하나님, 좀 짱입니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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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나의 집

일상다반사 2012. 5. 9. 12:20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이야기 하나.

어버이날, 엄마는 외갓댁에 가시고 아버지 혼자서 점심을 드셔야 할 상황이 생겼다. 마침 나도 화요일 오전시간은 한가한 터라, 안가시겠다시는 아버지를 모시고 해장국 집에 가서 한그릇 사 드렸다.

근래 들어 아버지가 그리 좋아하시는 것을 본 적이 없었는데, 내장탕 한 그릇에 세상 다 얻은듯한 얼굴 하시는 아버지를 보니 '머리털 나고 처음으로' 죄송했다.

부모님 모두 건강하실 때 어떻게든 조금 더 신경써 드려야겠다는 생각, 요즘 많이 한다. 나도 이제 정말 늙나보다.

안 그러면 나중에 두고두고 후회한다고, 나의 선배들이 늘 하던 그 말을, 이제야 조금씩, 쥐 오줌만큼 알아가고 있다.

 

 

이야기 둘.

어느 날 저녁상을 물리고 난 후 아들녀석이 아빠에게 뜬금없이 묻는다.

"아빠는....다시 태어나면 엄마랑 또 결혼할꺼야?"

"아니." 칼 같이 단호한 남편의 대답. 순간 움찔했다.

"엄마는.....이 다음에 아빠보다 더 능력있는 사람이랑 결혼해야지.....왜 또 아빠를 만나냐."

순간 가슴속이 찌리하다. 울컥한 마음.

나야말로, 당신이 나 같은 사람 또 만나믄 안되니깐 혹여 또 사람으로 태어나면 남자로 태어나서, 든든하게 당신 받쳐주는 재벌 형으로 태어나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우리 가족은 겉모습 뿐만 아니라 속마음까지 한덩어리가 되어 가고 있다.

 

 

이야기 셋.

학기 초, 아이가 학교 다녀와서 징징거렸다.

"엄마, 사실은 나 목요일에 학교가기가 싫어. 과학이 너무 싫어서."

사내놈이 과학을 싫어해...? 이게 머시가 될라고......별 생각이 다 들었지만 내색 않고 이유를 물었다. 여러 가지가 있었지만 교육 방법의 문제가 가장 컸다. 5학년밖에 안 된 것들한테 연강을 하는 것도 문제였고.

하여, 중간고사때 아예 처음부터 다시 가르쳤다. 두 개의 단원을 4등분해서 나흘에 걸쳐 차분차분, 실제로 꼬마 전구에 건전지까지 동원해서 전기회로 실험도 해 가며 가르쳤다.

나쁘지 않은 머리로 실수까지 하지 않아서 결과는 100점. 다른 아이들도 당연히 이 정도는 했겠거니 하고 특별나게 칭찬해 주진 않았더랬다. 그냥 "잘했네!" 정도.

그런데 웬일, 과학 백점은 반에서 아이 혼자뿐이었고 전교에서도 손가락에 꼽을만큼 시험이 어려웠다는 거다. 심지어 아이 친구의 엄마 한 분은 "글쎄, 간혹 가다가 이런 애들두 있다니깐..."하면서 아이의 점수에 놀라더란다. 덕분에 아이는 담임 선생님께 며칠동안 칭찬을 받았고 아이는 시너지가 생겨 으쓱거리며 학교를 다닌다.

낮은 자를 높이 들어 써 주시는 하나님, 머리 될 지언정 꼬리되지 않게 해 주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절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