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스 아 켐피스 / 그리스도를 본받아

오늘의 책 2013. 12. 26. 09:12 Posted by 따시쿵

토마스 아 켐피스( Thomas a Kempis)


토마스 아 켐피스는 평생 복음서의 그리스도를 깊이 묵상하여(히 3:1) 그리스도의 마음을 본받아(빌 2:5)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는(막 8:34) 삶을 살았다. 그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죽은 자’(갈 2:20)라는 은혜의 신분에서 늘 떠나지 않는 묵상의 삶, 기도의 삶을 살았으며 그의 글은 십자가의 교리는 있지만 십자가의 삶은 살지 않는 우리에게 회개의 경종과 믿음생활의 지침이 될 것이다. 토마스 아 켐피스의 회심에 대한 강조, 십자가 중심성, 다른 어떤 인간 중보자 없이 나와 하나님과의 관계를 중시하는 점 등은 루터의 종교개혁 사상의 맹아(萌芽) 역할을 하였다.




모든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에 관해


☞ 주님


나의 자녀야, 이 세상에서는 시험에서 벗어날 길이 없다. 네게는 언제나 영적인 무기가 필요하다. 기회만 있으면 공격해 오는 적들에게 둘러싸여 있기 때문이다(욥 7:1). 스스로를 지키지 않으면 상처를 입지 않을 재간이 없다. 나를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하지 못한다면 그 영적 전쟁의 군사로서 적합하지 않다. 그런즉 너는 용감해야 한다! 승리는 가치가 있지만 패배에는 괴로움과 고통만이 따른다.


만약 네가 이 세상에서 안식을 구한다면 어떻게 영원한 하늘의 안식을 누릴 수 있겠느냐? 충분한 안식이 아니라 강력한 인내를 구해야 한다. 진정한 평화는 이 세상이 아니라 천국에서 구해야 한다. 평화는 사람이나 그 어던 피조물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께만 가능할 뿐이다.


나에 대한 사랑에 힘입어 모든 것을 기쁘게 견뎌라. 바로 노동, 고통, 시험, 억울함, 불안, 궁핍, 질병, 비방, 중상, 비난, 굴욕, 혼란, 징계 그리고 멸시 등이다. 그것들은 특히 그리스도인이 된지 얼마 지나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괴로운 시험이겠지만 네가 더 나은 사람이 되도록, 놀라운 것을 준비할 수 있도록 만들어 줄 것이다. 너는 단순한 노력만으로도 영원한 보상을 받게 될 것이고, 또 어려움을 견디는 것으로 무한한 영광을 누리게 될 것이다.


언제가 영적 위로를 누릴 수 있겠느야? 그렇지 않다. 나의 가장 충성스러운 제자들까지도 문제, 시험, 그리고 슬픔을 느꼈다. 그러나 그들은 그 모든 것을 인내로 견디면서 자신들보다 나를 신뢰하며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롬 8:18). 이처럼 다른 사람들이 많은 눈물과 엄청난 영적 수고를 치르고 얻은 것을 단숨에 얻기를 기대하는 것은 터무니 없는 일이다.


인내하면서 나를 기다려야 한다. 자신의 행동을 제어하라. 용기를 내라. 고난이나 두려움 때문에 나를 섬기지 마라. 나의 영광을 위해 네 자신의 생명을 바쳐라. 내가 보상하겠고, 또 어려움을 겪을 때 너를 외면하지 않을 것이다(시 91:4).



인간의 헛된 판단에 관해


☞ 주님

 

나의 자녀야, 네 마음을 하나님께 단단히 맡겨라. 네 양심이 거룩함과 흠 없음을 입증할 때는 사람들의 판단을 두려워하지 마라. 그로 인해 고통을 겪는 것은 선하고 행복한 일이다. 마음이 겸손하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에게는 대단한 일이 아니다. 말이 많은 사람에게는 귀 기울이지 마라. 모두를 만족시키는 것은 결코 불가능하다.

 

바울은 하나님 안에서 모두를 만족시키려고 노력했고, 여러 사람에게 여러 모양(고전 9:22)이 되었지만, 사람들의 판단을 받아야 할 정도의 일은 거의 없었다(고전 4:3). 바울은 있는 힘과 재능을 다해 다른 사람들의 구원과 전도에 힘썼다(골 1:29). 그렇지만 어떤 판단을 받기도 했고, 멸시를 당할 때도 있었다. 그래서 그는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께 전부를 맡겼다. 부당한 말을 하고, 헛된 것과 거짓을 생각하고, 스스로를 자랑하는 사람들과 마주할지라도 겸손과 인내로써 응대했다. 마음이 약한 사람에게는 침묵하는 것이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대꾸할 때도 있었다(행 26장, 빌 1:14).

 

언젠가는 죽을 인간을 두려워하는 너는 도대체 누구냐?(사 51:12) 인간은 오늘 있다가도 내일이면 사라진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면 사람에 대한  공포는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사람이 그릇된 말과 행동으로 너를 어찌할 수 있겠느냐? 그는 너보다 스스로에게  해를 입히고, 하남님의 심판을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롬 2:3). 하나님께 시선을 고정한 채 사람들의 시비에 응대하지 마라. 당장은 회복이 불가능한 것 같고, 부당하게 수치를 겪는 것 같은지라도 속상해 하지 말고 성급하게 행동하지 마라(딤후 2:14). 오히려 온갖 부끄러움과 잘못된 것으로부터 구원하고, 각자의 행위에 따라 갚아줄 수 있는 하늘에 있는 나를 바라보라(마 16:27, 롬 2:6)

 

 

 

마음의 자유를 얻기 위한 포기에 관해


☞ 주님

 

나의 자녀야, 자신을 포기하면 나를 만나게 될 것이다.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마 16: 24). 스스로를 위해 선택하거나 자기 유익을 구하지 않으면 언제나 얻을 수 있다. 자신을 포기하고 그 결정을 번복하지 않으면 훨씬 더 큰 은총을 누리게 될 것이다.

 

 

☞ 따르는 자

 

주여, 얼마나 자주 포기해야 합니까? 무엇을 버려야 합니까?

 

☞ 주님

 

언제나, 매 순간마다 그래야 한다. 큰 것은 물론이고 작은 것까지 한꺼번에 포기해야 한다. 나는 어떤 것도 예외로 인정하지 않으니 모든 것을 다 내려놓을 수 있어야 한다. 만약 네가 안팎으로 자기 생각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네가 내게 속하고, 내가 네게 속할 수 있겠느냐? 빨리 포기할수록 내게 더 큰 기쁨을 안겨주기에 너는 더 많은 것을 누리게 될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을 포기하면서 몇 가지 예외를 두기도 한다. 그들은 하나님을 완벽하게 신뢰하지 않기에 스스로를 돌볼수 있는 방법을 강구한다. 또 어떤 사람들은 처음에는 모든 것을 바치지만 나중에 시험이 닥치면 과거의 방식으로 돌아가 전혀 덕도 쌓지 못하고, 어떤 진전도 이루지 못하기도 한다. 그들이 제일 먼저 전적으로 포기하지 않고, 매일 스스로를 희생하지 않는다면 투명한 마음이 누리는 진정한 자유에 도달하지 못할뿐 아니라 나와 친밀한 교제도 나누지 못할 것이다. 자신을 포기하지 않으면 결코 열매 맺는 진정한 결합이 이루어질 수 없다.

 

내가 자주 하던 말을 다시 한 번 강조하겠다. 자신을 부인하고(마 16:24) 네 자신을 내려놓으면, 진정한 내적 평화를 누리게 될 것이다. 모두를 위해 네가 가진 모든 것을 주어라. 아무것도 구하지 말고, 되돌려 받을 생각도 마라. 흔들림 없이 순수하게 내 안에 거하라. 그리하면 모든 것을 소유하게 될 것이다. 네 마음이 자유로우면 어둠이 찾아오지 않을 것이다(시 139:11). 이 일에 힘쓰라. 이 일을 기도의 제목으로 삼고, 바람으로 삼으면 모든 이기심을 벗어버리고, 모든 것을 포기한 나를 따르면서 자신을 죽이고 나와 함께 영생의 길에 들어설 수 있다. 그리하면 모든 헛된 상상과 악한 근심과 쓸모없는 걱정이 사라질 것이다. 지나친 두려움은 물러가고 무절제한 사랑 역시 모습을 감추게 될 것이다.

 

 

 

지혜로운 처신에 관해


☞ 주님

 

나의 자녀야, 네가 어디에 있든지 무슨 일을 하든지 매우 부지런히 힘써 내적으로 자유롭고 철저하게 스스로를 다스려야 한다. 모든 일을 네가 주도해야 하며, 그것들에 눌리게 되면 안 된다는 뜻이다. 네 행동의 주인이 되어야 하며, 결코 노예가 되어서는 안 된다. 오로지 너는 자유로운 사람이 되고, 진정한 믿음의 사람이 되어 하나님의 자녀가 누리는 몫과 자유를 누려야 한다. 하나님의 자녀는 이 세상의 물질을 의지하고 살아가면서도 영원한 것들을 묵상한다. 한쪽으로는 세상의 것들을 바라보면서, 또 한쪽으로는 하늘의 것들을 바라본다. 그들에게는 세상의 것들이 전부가 될 수 없다. 오히려 그들은 세상의 것들을 하나님이 결정하시는, 위대한 창조주가 결정하시는 방식으로 활용하면서 창조물의 질서를 바로 잡는다.

 

어떤 경우에든지 겉모습으로 판단하지 않고, 육신의 눈과 귀로 사물을 살피거나 듣지 않고, 모세처럼 주님께 지혜를 구하러 장막 안으로 들어가면(출 33:9)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될 것이고, 지금은 물론이고 앞으로 닥치게 될 여러 가지 일들에 관한 가르침을 받게 될 것이다. 모세는 의심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늘 장막을 이용했고, 위험한 일과 사람들의 잘못을 접할 때마다 기도를 통해 도움을 구했다. 그런즉 너도 이처럼 마음으리 골방으로 들어가서 진지하게 하나님의 도움을 구해야 한다(마 6:6).

 

우리가 성경에서 읽은 것처럼 여호수아와 이스라엘은 여호와께 묻지 않아서 기브온 사람들에게 속았다(수 9:14). 달콤한 말을 너무 쉽게 믿은 나머지 거짓된 행동을 의심하지 않은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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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노해 - 굽이 돌아가는 길

좋은 글귀 2013. 12. 26. 09:08 Posted by 따시쿵




굽이 돌아가는 길

                 

                              박노해


올곧게 뻗은 나무들보다는

휘어 자란 소나무가 더 멋있습니다

똑바로 흘러가는 물줄기보다는

휘청 굽이친 강줄기가 더 정답습니다.

일직선으로 뚫린 바른 길보다는

산따라 물 따라 가는 길이 더 아름답습니다.

  

곧은 길 끊어져 길이 없다고

주저앉지 마십시오.

돌아서지 마십시오.

삶은 가는 것입니다

그래도 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있다는 건

아직도 가야 할 길이 있다는 것

 

곧은 길만이 길은 아닙니다.

빛나는 길만이 길은 아닙니다.

굽이 돌아가는 길이 멀고 쓰라릴지라도

그래서 더 깊어지고 환해져 오는 길

서둘지 말고 가는 것입니다.

서로가 길이되어 가는 것입니다.

생을 두고 끝까지 가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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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리 나우웬 / 춤추시는 하나님

오늘의 책 2013. 12. 1. 21:50 Posted by 따시쿵

헨리 나우웬 (Henri J. M. Nouwen)


세계적으로 저명한 사제이자 존경받는 교수이며 사랑받는 목회자로 영적 삶에 관한 40여 권의 책을 썼다. 그의 책은 22개가 넘는 언어로 출간되어 2백만 부 이상 팔릴 만큼 많은 이들에게 영적 길잡이가 되었으며, 세상을 떠난 뒤로도 그의 가르침을 따르려는 이들은 줄지 않고 있다. 그는'그리스도인으로 산다는 것'에 대한 고민과 성찰을 맑고 따뜻한 시각으로 풀어내는 작가로 알려져 있다.


1932년 네덜란드 네이께르끄에서 3남 1녀 중 막내로 태어나 1957년 예수회 사제로 서품을 받았으며 6년간 심리학을 공부했다. 이후 미국에서 신학과 심리학을 연구한 그는 30대에 노트르담대학교에서 심리학을 가르치기 시작했고 1971년부터는 예일대학교에서 교수로 재직했다. 헨리 나우웬의 삶의 행보는 1981년을 기점으로 큰 변화를 맞이한다. 그 무렵 그는 하나님의 사랑에 빚진 자로서 거룩한 부담감을 품고 페루의 빈민가로 떠나 민중들과 함께 지내게 된다. 


이후 강단으로 돌아온 그는 하버드대학교에서 다시 학생들을 가르치지만 영혼의 안식을 찾지 못했고, 1986년에 정신지체장애인 공동체인 라르쉬 데이브레이크(L'Arche Daybreak)라는 새로운 부르심에 순종하게 된다. 헨리 나우웬은 1996년 9월 심장마비로 소천하기까지 그곳에서 장애인들과 함께 살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삶을 행동으로 보여주었다. 




기도하는 이에게 주는 선물


복음서에서 우리는 예수님이 따로 기도하러 가시는 모습을 자주 본다. 어스름한 새벽에 가실 때도 있었다. 기도를 통해 예수님은 자신을 보내신 분이 하늘 아버지임을 거듭 확인하신다. 예수님께 할 말을 주시는 분도 하나님이시다. 예수님은 사역의 '공로'를 자기 것으로 취하지 않으신다.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신다.


기도를 통해서만 우리는 다른 목소리를 들을 수 있고, 더 큰 가능성에 응답할 수 있으며, 명령하고 통제하려는 욕구에서 벗어나는 길을 찾을 수 있다. 그럴 때 우리의 정체를 좌우할 것 같던 다른 질문들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게 된다. "나를 좋게 말하는 사람은 누구이며 그렇지 않은 사람은 누구인가? 내 친구는 누구며 내 적은 누구인가? 나를 좋아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나?" 하나님을 삶의 중심으로 할 때 우리의 정체감은 나에 대한 다른 사람의 말이나 생각에 좌우되지 않는다. 우리는 대인 관계의 포로노릇을 그치게 된다.


기도는 우리에게 대인 관계가 우상이 되지 않게 하는 길을 보여준다. 우리가 사랑을 배우는 까닭은 , 오직 '먼저 사랑하신' 하나님의 지고한 사랑을 조금이나마 맛보았거나 느꼈기 때문임을 기도는 일깨워 준다.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사랑하셨음이라" (요일 4:19). 이 말씀 속에 대인 관계를 초월하는 사랑의 길이 있다. 먼저 주신 그 사랑을 입었기에 우리는 자유롭다. 그 사랑이 우리를 소외와 분리에서 벗어나게 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미래를 내 힘으로 제어할 수 있는 척하며 모든 것을 쌓아 두려는 강박 관념을 녹이는 사랑이다. 타인을 사랑할 능력을 주는 사랑이다.


기도는 세상을 소유의 대상이 아니라 선물로 여기는 태도다. 기도하면 선물을 주신 분에 대한 얘기를 그치지 않게 된다. 기도는 만사가 내 뜻대로 되야 한다는 집착에서 비롯되는 고난에서 우리를 벗어나게  해 준다. 마음을 열고 고난을 받아들이게 해 준다. 기도는 삶이라는 선물이 다른 사람들을 통해 계시된다는 사실을 우리가 새롭게 기억하도록 해 준다.


기도는 하나님이 어떤 일을 하실지 모른다고 인정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모험에 마음을 열지 않는 한 그분의 일을 절대 알 수 없다는 사실을 잊지 말라. 우리는 생각과 가슴을 열고 깊은 바다와 높은 하늘로 손을 뻗는 법을 배운다. 여러 면에서 기도는 삶에 대한 하나의 태도다. 언제나 주시는 선물에 마음을 여는 태도다. 우리는 새로운 일이 일어나게 할 용기를 얻는다. 그 일은 비록 내 힘으로 통제할 수 없지만 이제는 그다지 큰 위협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외모든, 타인에게 받은 소외든, 상처나 학대받은 기억이든, 타인의 손에 당한 압제든 우리는 인간의 그런 한계와 상처에 직면할  용기도 바로 기도를 통해 얻는다. 꺼리낌 없이 자신의 고민을 놓고 부르짖거나 타인의 고난을 위해 싸울 때 우리는 자신이 서서히 새로운 지점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내 힘으로 창조하거나 다스릴 수 없는 부분은 잠잠히 기다리는 습성이 생긴다. 기쁨이란 풍선과 파티의 문제도 아니고, 내 집 마련이나 자녀의 뛰어난 성적 문제도 아님을 깨닫는다. 기쁨은 그리스도를 깊이 체험하는 것과 상관 있다. 조용히 듣는 기도를 통해 우리는 이렇게 말씀하시는 음성을 분별하는 법을 배운다. "다른 사람이 너를 좋아하든 말든 나는 너를 사랑한다. 너는 내 것이다. 내가 네 안에 사는 것처럼 너도 내 안에 살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