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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3.11.07 이정록 - 더딘 사랑
  2. 2013.06.19 천상병 - 장마
  3. 2013.05.10 손석희 - 지각인생
  4. 2013.04.25 정지원 -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
  5. 2013.04.01 랄프 왈도 에머슨 - 성공이란
  6. 2013.02.07 정호승 - 나무에 대하여
  7. 2012.12.16 이형기 - 낙화 (1)
  8. 2012.12.16 김수영 - 풀 (2)
  9. 2012.11.23 조지훈 - 낙화 (2)
  10. 2012.11.23 김광섭 - 성북동 비둘기 (1)

이정록 - 더딘 사랑

좋은 글귀 2013.11.07 11:58 Posted by 따시쿵



더딘 사랑
                          이정록



돌부처는
눈 한번 감았다 뜨면 모래무덤이 된다
눈 깜짝할 사이도 없다

그대여 
모든 게 순간이었다고 말하지 마라
달은 윙크 한번 하는데 한 달이나 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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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상병 - 장마

좋은 글귀 2013.06.19 08:28 Posted by 따시쿵



장 마


                                   천상병


내 머리칼에 젖은 비 

어깨에서 허리께로 줄달음치는 비 

맥없이 늘어진 손바닥에도 

억수로 비가 내리지 않느냐, 

비여 

나를 사랑해 다오. 


저녁이라 하긴 어둠 이슥한 

심야(深夜)라 하긴 무슨 빛 감도는 

이 한밤의 골목 어귀를 

온몸에 비를 맞으며 내가 가지 않느냐, 

비여 

나를 용서해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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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석희 - 지각인생

좋은 글귀 2013.05.10 15:38 Posted by 따시쿵



지각인생


                                              손석희


나는 지각인생을 살고 있다

남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몰라도 나는 내가 지각인생을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대학도 남보다 늦었고 사회진출도 남들보다 짧게는 1년 길게는 3~4년 정도 늦은 편이다

능력이 부족했거나 다른 여건이 여의치 못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모든 것이 이렇게 늦다 보니 내게는 조바심보다 차라리 여유가 생긴 편인데

그래서인지 시기에 맞지 않거나 형편에 맞지 않는 일을 가끔 벌이기도 한다

 

내가 벌인 일 중 가장 뒤늦고도 내 사정에 어울리지 않았던 일은

나이 마흔을 훨씬 넘겨 남의 나라에서 학교를 다니겠다고 결정한 일일 것이다

 

1997년 봄 서울을 떠나 미국으로 가면서

나는 정식으로 학교를 다니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남들처럼 어는 재단으로부터 연수비를 받고 가는 것도 아니었고

직장생활 십수년하면서 마련해 두었던 알량한 집 한채 전세 주고

그 돈으로 떠나는 막무가내식 자비 연수였다

그 와중에 공부는 무슨 공부 학교에 적은 걸어놓되

그저 몸 성히 잘 빈둥거리다가 오는 것이 내 목표였던 것이다.

 

그러던 것이 졸지에 현지에서 토플 공부를 하고

나이 마흔 셋에 학교로 다시 돌아가게 된 까닭은

뒤늦게 한 국제 민간재단으로부터 장학금을 얻어낸 탓이 컸지만

기왕에 늦은 인생, 지금에라도 한번 저질러 보자는 심보도 작용한 셈이었다

 

미네소타 대학의 퀴퀴하고 어두컴컴한 연구실 구석에 쳐박혀

낮에는 식은 도시락 까먹고 저녁에는 근처에서 사온 햄버거를 꾸역거리며 먹을 때마다

나는 서울에 있는 내 연배들을 생각하면서 다 늦게 무엇하는 짓인가 후회도 했다

20대의 팔팔한 미국 아이들과 경쟁하기에는 나는 너무 연로해 있었고

그 덕에 주말도 없이 매일 새벽 한두시까지 그 연구실에서 버틴 끝에 졸업이란 것을 했다

돌이켜보면 그때 나는 무모했다 하지만 그때 내린 결정이 내게 남겨준 것은 있다

그 잘난 석사 학위? 그것은 종이 한장으로 남았을 뿐 그보다 더 큰 것은 따로 있다

 

첫 학기 첫 시험때 시간이 모자라 답안을 완성하지 못한 뒤

연구실 구석으로 돌아와 억울함에 겨워 찔끔 흘렸던 눈물이 그것이다

중학생이나 흘릴 법한 눈물을 나이 마흔 셋에 흘렸던 것은

내가 비록 뒤늦게 선택한 길이었지만

그만큼 절실하게 매달려 있었다는 방증이었기에 내게는 소중하게 남아있는 기억이다.

 

혹, 앞으로도 여전히 지각인생을 살더라도

그런 절실함이 있는 한 후회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지각인생도 자기가 어떻게 살아가느냐에 따라 때론 멋진 인생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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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원 -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

좋은 글귀 2013.04.25 08:26 Posted by 따시쿵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

 

                                    정지원

 

단 한 번이라도

목숨과 바꿀 사랑을 배운 사람은

노래가 내밀던 손수건 한 장의

온기를 잊지 못하리

지독한 외로움에 쩔쩔매도

거기에서 비켜서지 않으며

어느 결에 반짝이는 꽃눈을 닫고

우러우렁 잎들을 키우는 사랑이야말로

짙푸른 숲이 되고 산이 되어

메아리로 남는다는 것을

 

강물 같은 노래를 품고 사는

사람은 알게 되리

내내 어두웠던 산들이 저녁이 되면

왜 강으로 스미어 꿈을 꾸다

밤이 길수록 말없이

서로를 쓰다듬으며 부둥켜 안은 채

느긋하게 정들어 가는지를

 

누가 뭐래도 믿고 기다려주며

마지막까지 남아

다순 화음으로 어울리는 사람은 찾으리

무수한 가락이 흐르며 만든

노래가 우리를 지켜준다는 뜻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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랄프 왈도 에머슨 - 성공이란

좋은 글귀 2013.04.01 08:07 Posted by 따시쿵

 

성공이란

 

                          랄프 왈도 에머슨

 

날마다 많이 웃게나.

지혜로운 사람에게 존경받고

해맑은 아이들에게 사랑을 받는 것,

정직한 비평가들에게 인정을 받고

거짓된 친구들의 배반을 견뎌내는 것,

진정한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다른 사람의 장점을 알아보는 것,

튼튼한 아이를 낳거나

한 뼘의 정원을 가꾸거나

무엇이든 자신이 태어나기 전보다

조금이라도 나은 세상을 만들어 놓고 가는 것,

자네가 이곳에 살다간 덕분에

단 한 사람의 삶이라도 더 풍요로워지는 것,

이것이 바로 성공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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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승 - 나무에 대하여

좋은 글귀 2013.02.07 10:00 Posted by 멋진아낙네

 

 

나무에 대하여

                                 정호승

 

나는 곧은 나무보다
굽은 나무가 더 아름답다
곧은 나무의 그림자보다
굽은 나무의 그림자가 더 사랑스럽다
함박눈도 곧은 나무보다
굽은 나무에 더 많이 쌓인다
그늘도 곧은 나무보다
굽은 나무에 더 그늘져
잠들고 싶은 사람들이 찾아와 잠이 든다
새들도 곧은 나뭇가지보다
굽은 나뭇가지에 더 많이 날아와 앉는다
곧은 나무는 자기의 그림자가
구부러지는 것을 싫어하나
고통의 무게를 견딜 줄 아는
굽은 나무는 자기의 그림자가
구부러지는 것을 싫어하지 않는다

 

나중에 가정을 꾸리면 거실에 표구로 만들어 매달자"라고 당신이 써 놓았더군, 이 시집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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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기 - 낙화

좋은 글귀 2012.12.16 18:18 Posted by 따시쿵

 

 


낙 화

 

                 이 형 기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봄 한철

격정을 인내한

나의 사랑은 지고 있다.

 

분분한 낙화......

결별이 이룩하는 축복에 싸여

지금은 가야 할 때,

 

무성한 녹음과 그리고

머지않아 열매 맺는

가을을 향하여

나의 청춘은 꽃답게 죽는다.

 

헤어지자

섬세한 손길을 흔들며

하롱하롱 꽃잎이 지는 어느 날

 

나의 사랑, 나의 결별,

샘터에 물 고이듯 성숙하는

내 영혼의 슬픈 눈.

 

이형기 시인은 1950년 시 [비 오는 날]을 잡지 <문예>에 발표하면서 등단했다. 그때 그의 나이 열일곱살. 최연소 등단 기록이었다. "시란 본질적으로 구축해 놓은 가치를 허무화시키는 작업이야. 시에 절대적 가치란 없어. 자꾸 다른 곳으로 가는 팔자를 타고난 놈들이 시인이야. 그 무엇이건 전적으로 수용하지 않으려는 정신의 자유 말이야" 그는 시 창작뿐만 아니라 소설, 평론, 수필 등에 이르기까지 열정적인 창작 활동을 펼쳤다. 초기에는 자연 서정을 선보였으나 현대 문명을 통렬하게 비판하는 악마적이고 그로테스크한 시세계로 나아갔다. 그는 한국 시사에서 존재론적 미학을 선보였다.

 

"고독과 고통은 시인의 양식"이라고 말했던 그는 뇌졸중으로 쓰러져 오랜 투병 생활을 했다. 그러나 고통스러운 병석에 있으면서도 아내의 대필로 시를 계속 창작했다. 그는 슬픔에 휩싸인 사람들을 위로하며 이렇게 아포리즘을 남겼다. "슬퍼할 수밖에는 없는 일이 이 세상에는 적지 않다. 그때는 슬퍼해 봐도 물론 아무 소용이 없는 일이다. 그러나 아무 소용이 없기 때문에 슬퍼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슬픔은 그 차제가 목적이 될 수 있는 것이다.그리고, 그런 슬픔은 가장 순수하고 따라서 값지다."

 

꽃의 낙화에는 만행을 떠나는 수행자의 뒷모습이 있다. 미련 없이 돌아서기 때문에 낙화에는 요사도 구차도 없다. 아쉬움이 없을 이 없다. 이별은 등 뒤를 허전하게 만들고, 며칠 눈물을 돌게 할 것이다. 그러나 제때에 따나감은 말끔하고 쾌적하다.

 

새잎이 돋고,줄기가 힘차게 뻗고, 꽃이 벙글고, 꽃벌이 꽃의 외곽을 맴돌고, 비로소 어느 아침에는 꽃이 "하롱하롱" 지고, 꽃의 시간을 구구절절 기억하며 열매가 맺히고...... 우리의 몸과 마음도 이 큰 운행을 벗어나기 어렵다.

 

부귀는 빈천으로 바뀌고, 만남은 이별로 바뀌고, 건강은 늙고 죽음을 초래한다. 시시각각 바뀐다. 그래서 이런 것에는 견실성이 없다. 견실성이 없으므로 집착할 것이 못 된다. 이형기 시인의 초기 시에 속하는 이 시는 집착 없음과 아름다운 물너남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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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영 - 풀

좋은 글귀 2012.12.16 18:01 Posted by 따시쿵





                                    김 수 영


풀이 눕는다.

비를 몰아오는 동풍에 나부껴

풀는 눕고

드디어 울었다

날이 흐려서 더 울다가

다시 누웠다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


날이 흐리고 풀이 눕는다

발목까지

발밑까지 눕는다

바람보다 늦게 누워도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바람보다 늦게 울어도

바람보다 먼저 웃는다

날이 흐리고 풀뿌리가 눕는다



풀은 이 세상에서 제일로 흔하다. 풀은 자꾸자꾸 돋는다. 비를 맞으면 비를 받고 눈보라가 치면 눈보라를 받는다. 한 계절에는 푸르고 무성하지만, 한 계절에는 늙고 병든 어머니처럼 야위어서 마른 빛깔 일색이다. 그러나 이 곤란 속에서도 풀은 비명이 없다. 풀은 바깥에서 오는 것들을 긍정한다.


풀은 낮은 곳에서 유독 겸손하다. 풀은 둥글게 휘고 둥글게 일어선다. 꺽임이 없는 '둥근  곡선'의 자세가 풀의 미덕이다. 느리지만 처음 있던 곳으로 되돌리는 이 불굴의 힘을 풀은 갖고 있다. 풀은 이변을 꿈꾸지 않는다. 제 몸이 무너지면 그 무너진 자리에서 스스로 제 몸을 일으켜 세운다. 풀은 솔직한 육필이다. 풀은 '발밑까지' 누워도 발밑에서 일어선다. 바닥까지 내려가 보았으므로 풀은 이제 벼랑을 모른다.


우리는 날마다 새날을 받는다. 새날을 받고도 많은 사람들의 마음은 어제에 있다. 어제의 슬픔과 어제의 이별과 어제의 질병과 어제의 두려움 속에 있다. 그러나 어제의 곤란은 어제의 곤란으로 끝나야 한다. 열등은 어제의 열등으로 끝나야 한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의 내심에 모든 것을 다 갖추고 있다. 이것을 잘 아는 사람은 만 명의 적이 와도 무서움이 없으며 물러섬이 없을 것이다.자존自尊과 자립自立의 에너지가 우리의 자성自性이다.


나아지고 있다는 믿은, 일어서고 있다는 믿은, 넓고 큰 세상으로 가고 있다는 믿음, 당신을 더 사랑하게 되리라는 믿음......... 우리는 이 짐작과 다짐으로 새날을 살아야 한다.


[풀]은 김수영의 마지막 작품이고, 그의 시는 사람들 가슴속에 눕고 울고 일어서며 푸르게 살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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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김수영,

조지훈 - 낙화

좋은 글귀 2012.11.23 18:44 Posted by 따시쿵

 

낙    화            

                          조 지 훈

 

꽃이 지기로서니

바람을 탓하랴

 

주렴 밖에 성긴 별이

하나 둘 스러지고

 

귀촉도 울음 뒤에

머언 산이 다가서다,

 

촛불을 꺼야 하리

꽃이 지는데

 

꽃 지는 그림자

뜰에 어리어

 

하이얀 미닫이가

우련 붉어라.

 

묻혀서 사는 이의

고운 마음을

 

아는 이 있을까

저어하노니

 

꽃이 지는 아침은

울고 싶어라.

 

 

천지에 꽃 피는 소리 가득하다. 등성이는 등성이대로 기슭은 기슭대로 봄꽃들 넘쳐 난다. 껍질만 살짝 문질러도 생강 냄새가 확 풍기는, 산수유꽃 닮은 생강나무꽃, 사람 환장하게 한다는 산복사꽃, 개살구꽃. 그리고 제비꽃, 메꽃, 달맞이꽃, 애기똥풀꽃, 쑥부쟁이꽃. 이 꽃들의 소요! 사람 홀린다는 흰동백꽃, 바람 불 때마다 이리저리 흔들린다는 꿩의바람꽃. 아침이면 수줍은 듯 고개 숙이다가 해가 나면 자줏빛 꽃잎을 활짝 연다는 바람난 처녀꽃 엘레지꽃. 홀아비바람꽃, 너도바람꽃. 며느리배꼽꽃. 저 꽃들의 고요.

 

"어진 이는 만월滿月을 경계하고 / 시인은 낙화를 찬미하나니 / 그것은 모순의 모순이다."(한용운 [모순])라고 했거늘, 꽃이 떨어지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사람이야말로 세속의 분별과 속도로부터 한 걸음 물러서 있는 사람이리라. 조지훈 시임은 섭리로부터의 소멸에 대한 아름다운 통찰을 보여 준 시인이다.'지조志操'를 지킨 논객이었으며, '주정酒酊'의 교양과 '주격酒格'의 품계를 변별했던 풍류를 아는 학자였으며, 무엇보다 낙화를 찬미할 줄 아는 시인이었다.

 

이 시는 화두처럼 시작한다. "꽃이 지기로서니 / 바람을 탓하랴". 꽃은 바람에 지지 않는다. 피면 지고, 차면 이울기 마련이라서, 꽃은 꽃의 시간이 다해서 지는 것이다. 저 꽃을 지게 하는 건 바람이 아니라 밤을 아침으로 바꾸는 시간이다. 시인은 촛불이 켜진 방 안에서, 주렴 밖으로 꽃이 지는 것을 보고 있다. 아니 꽃이 지는 소리를 듣고 있는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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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섭 - 성북동 비둘기

좋은 글귀 2012.11.23 18:19 Posted by 따시쿵

 


성북동 비둘기


                     김 광 섭

 

 

성북동 산에 번지가 새로 생기면서

본래 살던 성북동 비둘기만이 번지가 없어졌다.

새벽부터 돌 깨는 산울림에 떨다가

가슴에 금이 갔다.

그대도 성북동 비둘기는

하느님의 광장 같은 새파란 아침 하늘에

성북동 주민에게 축복의 메시지나 전하듯

성북동 하늘을 한 바퀴 휘 돈다.

 

성북동 메마른 골짜기에는

조용히 앉아 콩알 하나 찍어 먹을

널찍한 마당은커넝 가는 데마다

채석장 포성이 메아리쳐서

피난하듯 지붕에 올라앉아

아침 구공탄 굴뚝 연기에서 향기를 느끼다가

산1번지 채석장에 도로 가서

금방 따낸 돌 온기에 입을 닦는다.

 

예전에는 사람을 성자처럼 보고

사람 가까이

사람과 같이 사랑하고

사람과 같이 평화를 즐기던

사랑과 평화의 새 비둘기는

이제 산도 잃고 사람도 잃고

사랑과 평화의 사상까지

낳지 못하는 쫒기는 새가 되었다.

 

 

김광섭 시인의 호는 이산(怡山). '기쁜 산'이다. 그는 시인일뿐만 아니라 창씨 개명을 반대한 애국 교육자, 해방 후 중앙문화협회를 창립한 우익 문단의 건설자, 이승만 대통령 공보비서관을 지낸 정치인. 언론자 편집국장을 지낸 언론인으로 우리의 현대사를 정말 '산'처럼 살았다. 실제로도 그는 늘 산을 향해 있었다.

 

'남포 깐다', '남포 튼다'는 말이 있었다. 남포란 다이너마이트를 이르는 말이다. 이 개발 저 개발로 너도나도 산업화의 역군이였던 1960~1970년 내내 대한민국 전역에서 이 산 저 산을 깨는 남포 소리 울려 퍼졌다. 산을 깎아 돌을 채취하고 도로를 만들고 빌딩을 올리곤 했다. 뻥뻥 남포를 까면 산에 살던 뭇 짐승들은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고 강에 살던 뭇 물고기들은 기절을 해 배를 뒤집은 채 떠내려가기도 했다. 뻥뻥 남포 까는 소리에 밤 보따리를 싸 들고 서울로, 서울로 몰려든 사람들이 산동네, 달동네로 몰리던 시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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