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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2.12.16 정채봉 / 날고 있는 새는 걱정 할 틈이 없다

다양하고 복잡한 현대를 살면서 마음 한구석 무언가 텅 빈 느낌으로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영혼을 채워주는 정신의 ‘일용할 양식’과 같은 잠언집. 


작가 정채봉은 생전에 ‘어른을 위한 동화’ 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하면서 바쁘게 돌아가는 현대 사회에서 자칫 잃어버리기 쉬운 동심과 사랑, 자연, 나눔 등 삶의 진정한 가치를 일깨워주었다. 그는 어린이의 때 묻지 않은 맑은 시선을 통해 현대인의 은밀한 내면을 날카롭게 파헤치기도 하고, 삶에서의 희로애락을 섬세한 시선으로 함축적으로 표현해내기도 했다.


『날고 있는 새는 걱정할 틈이 없다』는 동화적인 감성으로 철학적인 내용을 풀어냄으로써 모든 사물과 세상, 그리고 인생에 대한 성찰과 깨달음을 주는 명상잠언집이다. 그가 남긴 어떤 작품집보다도 그의 시적인 감성과 삶의 본질을 꿰뚫는 통찰력이 돋보이는 작품집이기도 하다. 


우리들 각각의 마음속에 숨어 있는 인간의 본성을 콕 꼬집어 냈는가 하면, 살아가면서 지녀야 할 올바른 가치관을 우화적으로 표현해 지금의 내 모습과 지난날을 되돌아보게 해준다. 또한 곤란과 갈등에 처했을 때 도움이 되는 지혜와 단순하지만 명확히 알지 못했던 정의와 진리도 담겨 있다. 


이 책은 마치 『탈무드』를 읽는 것처럼 쉽게 읽히면서 무릎을 탁 치게 하는 깨달음을 주기에, 초등학생부터 2,30대 성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독자층을 위한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순간순간을 사는 지혜의 이야기들을 읽고 있자면 작가 정채봉의 맑은 눈망울 속에서 깨끗하게 씻겨지는 내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2004년 나온 동제의 책의 개정판에 해당한다.



정채봉(丁埰琫)

우리가 잊고 살아가는 세상의 모습을 동화라는 창을 통해 새로운 모습으로 환기시켜 주었던 아동문학가.


1946년 전남 승주의 작은 바닷가 마을에서 태어났다. 수평선 위를 나는 새, 바다, 학교, 나무, 꽃 등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배경이 바로 그의 고향이다. 동국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으며 1973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동화 부문에 「꽃다발」로 당선의 영예를 안고 등단했다. 대한민국문학상(1983), 새싹문화상(1986), 한국 불교아동문학상(1989),동국문학상(1991), 세종아동문학상(1992), 소천아동문학상(2000)을 수상했다. 


깊은 울림이 있는 문체로 어른들의 심금을 울리는 '성인 동화'라는 새로운 문학 용어를 만들어 냈으며 한국 동화 작가로서는 처음으로 동화집 『물에서 나온 새』가 독일에서, 『오세암』은 프랑스에서 번역 출간되었다. 마해송, 이원수로 이어지는 아동 문학의 전통을 잇는 인물로 평가받으며 모교인 동국대, 문학아카데미, 조선일보 신춘문예 심사 등을 통해 숱한 후학을 길러 온 교육자이기도 했다. 동화 작가, 방송 프로그램 진행자, 동국대 국문과 겸임 교수로 열정적인 활동을 하던 1998년 말에 간암이 발병했다. 죽음의 길에 섰던 그는 투병 중에도 손에서 글을 놓지 않았으며 그가 겪은 고통, 삶에 대한 의지, 자기 성찰을 담은 에세이집 『눈을 감고 보는 길』을 펴냈고, 환경 문제를 다룬 동화집 『푸른 수평선은 왜 멀어지는가』, 첫 시집 『너를 생각하는 것이 나의 일생이었지』를 펴내며 마지막 문학혼을 불살랐다. 평생 소년의 마음을 잃지 않고 맑게 살았던 정채봉은 사람과 사물을 응시하는 따뜻한 시선과 생명을 대하는 겸손함을 글로 남긴 채 2001년 1월, 동화처럼 눈 내리는 날 짧은 생을 마감했다. 


한편 우리에게 동화 작가로 가장 많이 알려져 있지만 사실 그가 남긴 작품은 동화라는 제한적이고 규정적인 울타리를 훌쩍 뛰어넘는다. 그는 놀라운 창작열로 소설과 시, 에세이 등 다양한 작품을 남겼고, 이들 작품은 하나같이 유례를 찾기 힘든 문학적 향취를 유지하고 있다. 그는 또한 한국 문학사에서 ‘성인 동화’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하여 동화의 독자를 어린이들로 한정하지 않고 성인들로 확장했다. 사실 동화 속에 담긴 메시지, 즉 순수의 회복이라는 주제가 겨냥해야 하는 이들은 어린이가 아니라 성인들이다. 많은 작가 외에도 법정 스님, 이해인 수녀님, 김수환 추기경님 등 여러 종교인들과 오랜 기간 마음을 나누며 지냈다.


정채봉은 각박하고 흉흉한 세상살이를 겪는 동안 사람들은 애초에 지녔던 동심의 순수한 영혼을 잃고 이기적이고 계산적인 욕망에 사로잡히게 된다고 생각했다. 그는 자신의 글로써 이들의 박토처럼 메마른 영혼을 어루만져 주고 위로하고 싶었다. 그래서 쓰게 된 것이 바로 ‘성인 동화’이다. 정채봉의 생각처럼, 어른들은 성인 동화를 읽으면서 비로소 자신들의 망실된 동심과 순수를 깨닫고 자신을 성찰하고 수굿한 위안을 받게 되었다. 2010년 건립된 순천문학관에는 그의 생애와 문학 사상을 기리기 위한 정채봉관이 마련되어 있다




상처 없는 새가 어디 있으랴


상처를 입은 젊은 독수리들이 벼랑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날기 시험에서 낙방한 독수리.

짝으로부터 따돌림을 받은 독수리.

윗독수리로부터 할큄당한 독수리.

그들은 이 세상에서 자기들만큼 상처가 심한

독수리들은 없을 것이라고들 생각했다.

그들은 사는 것이 죽느니만 못하다는 데 금방 의견이 일치했다.


이때, 망루에서 파수를 보던 독수리 중의 영웅이

쏜살같이 내려와서 이들 앞에 섰다.

"왜 자살하려고 하느냐?"

"괴로워서요. 차라리 죽아 버리는 것이 낫겠어요."

영웅 독수리가 말했다.

"나는 어떤가? 상처 하나 없을 것 같지? 그러나 이 몸을 봐라."

영웅 독수리가 날개를 펴자 여기저기 빗금친 상흔이 나타났다.

"이건 날기 시험 때 솔가지에 찢겨 생긴 것이고,

이건 윗독수리한테 할퀸 자국이다.

그러나 이것은 겉에 드러난 상처에 불과하다.

마음의 빗금 자국은 헤아릴 수도 없다."

영웅 독수리가 조용히 말했다.

"일어나 날자꾸나. 상처 없는 새들이란

이 세상에 나자마자 죽은 새들뿐이다.

살아가는 우리 가운데 상처 없는 새가 어디 있으랴!"



내 자리에서 찾은 행복


올해 열두 살 난 소년 가장 수기를 읽었지요.

이 소년은 10년 전 뺑소니 교통 사고를 당한

아버지의 병시중을 혼자 들면서 살아가고 있다고 합니다.

어머니는 사고가 난 후 곧바로 집을 나가 버렸고,

할아버지도 3년 전에 위암으로 돌아가시면서

병원비 백만 원을 이 소년에게 짐 지워 놓았다는군요.


이 소년의 하루 일과는 이렇습니다.

새벽 4시, 사발 시계의 소리에 일어나서 신문 보급소행.

배달을 마치고 7시쯤에 돌아와서 밥을 지어 서둘러

아버지와 밥을 먹고 아버지 점심상을 봐둔 다음에 학교로.

이 소년의 점심은 학교의 교장 선생님이 준비해 준 도시락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소년은 점심 도시락에 좀 다른 반찬이 있으면 몰래 덜어내

비밀봉지에 싸서 책가방 속에 넣어 가지고 집으로 옵니다.


이 소년이 집에 돌아와서 하는 첫번째 일은 하반신이 마비된 아버지의

욕창 소독과 대소변 처리이며, 3일에 한 번씩은 관장도 시킨다고 합니다.

그러고는 아버지가 누워서 해 놓은 신발 밑창을 오리는 일거리를 

공장에 가져다 주고 새로 받아온 다음, 빨래하고, 청소하고, 저녁밥을 짓

는다고 합니다. 소년은 이제 할아버지가 돌아기시면서 남겨 놓은

새마을금고의 1백만 원 빚도 두 번만 넣으면 끝난다고 좋아합니다.


이 소년의 하루 가운데 가장 즐거운 시간은 저녁 식사 시간이라고 합니다.

학교에서 남겨 온 반찬, 이웃집 아줌마가 담가 준 김치 그리고 콩나물국과

함께 밥을 먹으면서 아버지와 도란도란 이야기를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소년은 저녁 식사를 마치고 이렇게 기도를 한다고 합니다.

"하느님 저에게 이 순간의 행복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보증금 30만 원에 월 4만 원씩의 사글세 방에 사는 이 소년 가장의 수기는

놀랍게도 이런 글귀로 끝을 맺었습니다.

"이제는 어떠한 어려움 속에서도 살아갈 용기가 있다. 만일 풍족한 생활

에서 행복을 찾으려고 했다면 지금의 이 작은 행복은 맛보지 못했을 것이

다. 이처럼 작은 행복에 만족할 수 있는 것은 지나온 날들이 나에게 괴로

움과 힘을 함께 주었기 때문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