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W 토저 / 이것이 그리스도인이다

오늘의 책 2014. 8. 11. 07:28 Posted by 따시쿵

에이든 토저, Aiden Wilson Tozer


'이 시대의 선지자'로 불리는 에이든 토저는 목사이자 저술가였다. 1897년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뉴버그에서 태어났다. 정식 학교 교육을 받은 적은 없지만, 1919년부터 생을 마감할 때까지 미국과 캐나다에서 목회사역을 하였다. 그는 미국의 복음주의 교단 중 하나인 'CMA'(Christian and Missionary Alliance) 소속 교회에서 44년간 목회를 했고, 그 중 31년을 시카고의 '남부 동맹 교회'에서 시무했다.


경건시와 신비주의적인 찬송, 에머슨과 셰익스피어의 글을 좋아한 그는, 폭넓은 독서를 바탕으로 한 풍성하고 은혜로운 설교로 많은 사람들에게 감명을 주었다. 또한 그는 기독교가 세상과 절충하여 타협된 복음을 전하는 것에 대해 경고하고, 회개 없는 그리스도 영접이나 십자가 없는 성공 처세술을 전하는 것은 사이비 기독교라고 비판했다. 그는 교회의 부패한 현실을 직시해 인기에 영합하지 않고 타협 없는 하나님의 말씀을 강하게 선포했다.


대표적인 저서로는 『하나님을 추구함』,『경건 생활의 기초』,『패배를 통한 승리』,『하나님을 바로 알자』『거듭난 자의 생활』,『경건 생활의 기초』,『경건 생활의 비결』,『예수 방향으로 가라』등이 있다.




성경의 진리를 자신에게 비추는 자가 그리스도인이다


"너희가 주의 인자하심을 맛보았으면 그리하라 사람에게는 버린 바가 되었으나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입은 보배로운 산 돌이신 예수께 나아가 너희도 산 돌 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 (벧전 2:3-5)


성경을 읽는 사람들이 착각하는 것 중 하나는 어떤 진리의 말씀이 자동적으로 자신에게 적용된다는 생각이다. 다시 말해, 어떤 진리가 성경 안에 있으므로 그것이 자동적으로 그들에게 진리가 된다는 생각이다. 그러나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다.


"[만일] 너희가 '주께서 인자하시다는 것'을 맛보았으면 그리하라"(벧전 2:3, '만일'이라는 단어는 개역개정판 한글성경에 나오지 않는다. '주께서 인자하시다는 것'이 개역개정판 한글성경에서는 '주의 인자하심'으로 번역되어 있다)


베드로는 '만일(if)' 이라는 단서를 붙인다. 그는 "만일 너희가 주께서 인자하시다는 것을 맛보았다면, 내가 지금부터 말하는 것이 너희에게 적용될 것이다. 하지만 너희가 그분이 인자하시다는 것을 맛보지 못했다면 너희는 처음으로 돌아가 먼저 그분이 인자하시다는 것을 맛보아야 한다. 그런 다음에야 비로소 전진이 가능해진다"라고 말한 것이다.


신약이 말해주는 놀라운 사실은 우리가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았고, 또 주께서 인자하시다는 것을 맛보았다는 것이다.



끝까지 받아 들이는 것


베드로전서 2장 3절의 원어의 의미를 찾아보기만 하면 우리는 '맛보다'라는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게 될 것이다. 여기서 이말은 어떤 것을 삶 속에서 온전히 체험하여 그것을 영원히 우리의 것으로 만드는 것을 의미한다.


"오직 우리가 천사들보다 잠시 동안 못하게 하심을 입은 자 곧 죽음의 고난 받으심으로 말미암아 영광의 존귀로 관을 쓰신 예수를 보니 이를 행하심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음을 맛보려 하심이라"(히 2:9)


'맛보다'라는 표현에 대해 신학적 해석을 내리려는 사람들은 이 히브리서 말씀에 주목해야 한다. 신약에 나오는 '맛보다'라는 표현이 '단지 자기 마음에 드는지 들지 않는지를 알기 위해 슬쩍 맛보는 것'을 의미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예수님도 죽음을 단지 시험적으로 슬쩍 맛보셨다고 해석해야 할 것이다. 그것은 베드로전서 2장 3절에 사용된 원어와 히브리서 2장 9절에 사용된 원어가 동일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결과가 어떤지를 알기 위해 슬쩍 맛보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여기서 '맛보다'라는 것은 체험하고 통과하고 부딪히고 끝까지 견뎌내는 것을 의미한다.



선물과 선물을 주신 분이 분리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선물과 그것의 근원을 분리해서는 안 되며, 선물과 선물을 주신 분을 분리해서도 안 된다. 우리는 "나는 용서받았다"라고 말해서는 안 되고 "하나님께서 나를 용서하셨다"라고 말해야 한다. "내게는 영생이 있다"라고 말해서는 안 되고 "하나님께서 내게 영생을 주셨고 그리스도께서 내 삶 속에 계신다"라고 말해야 한다. 요컨대 하나님께서는 하니님과 하나님의 선물을 분리하지 않으신다. 하나님께서 무엇을 주시든 간에 하나님께서는 그 안에서 그분 자신을 주시지 않을 수 없다. 어떤 사람이 용서를 받았다면 그것은 용서의 하나님이 그 사람을 만져주신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를 용서하신 것은 사실이지만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시다. 어떤 사람이 영생을 얻었다는 것은 바꿔 말하면 그가 예수 그리스도를 알게 되었다는 것인데, 여기서 "알게 되었다"는 것은 "체험하게 되었다"라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선물을 하나님으로부터 분리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선물이 아니라 선물을 주신 분에 집중해야 한다


아주 좋지 않은 예가 복음서에 나오는데 그것은 주님을 만난 열명의 나병환자가 치료를 받았지만 그들 중 한 명만이 주님께 감사한 사건이다. 그들은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눅 17:14) 라는 주님 말씀을 듣고 길을 가다가 깨끗함을 받았다. 건강이라는 선물을 받은 것이다. 그들 중 아홉 명은 건강이라는 선물에 만족하여 그들의 길을 계속 갔다. 그런데 한 사람은 그 선물을 주신 분을 기억했다. 그의 관심이 선물 자체에서 선물을 주신 분으로 옮겨진 것이다. 그는 겸손한 마음으로 다시 돌아와 주님께 감사했다. 그때 주님은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눅 17:17) 라고 말씀하셨다. 다른 아홉 사람은 선물 자체에 만족하는 것으로 끝났다. 오직 한 사람만이 다시 돌아와 선물을 주신 분을 더 잘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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