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헌의 백가기행 百家紀行

오늘의 책 2012. 12. 29. 12:58 Posted by 따시쿵

집이란 무엇인가?

 

다양한 집들은 공간이 사람의 생각을 변화시키며, 집 그 자체가 인생철학을 드러낸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는 책 『조용헌의 백가기행』. 현대 우리 사회의 '집'이란 재산적 가치가 크다. 부동산 값의 상승과 하락에 사람들이 웃고 울고, 하우스푸어라는 신조어가 탄생하는 이 시점에 저자는 재산과 신분의 상징으로서의 집이 아니라, 원래 집이 가지고 있어야 할 의미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집 안에서 구원을 얻으라’는 말인 ‘가내구원(家內救援)’을 집의 가치로 꼽으며 축령산 자락에 자리한 한 칸 오두막집에서부터 차는 풍류가 아니라 혁명이라 말하는 부산 달맞이고개의 다실 이기정까지, 동양학자이자 칼럼니스트인 조용헌의 눈으로 바라본 '집' 이야기를 들으며 ‘우리 시대 집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아간다.

"위로와 휴식은 집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집 안에 있다."라고 말하는 저자는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갖추어야 장치로 '다실'과 '정원', 그리고 '구들장'을 가내구원의 조건을 꼽는다. 이 세가지 조건의 의미를 21채의 집을 통해 설명하며 저자는 우리 시대 집의 진정한 의미를 진지하고 열린 관점으로 바라보도록 이끌고 있다.

 

조용헌

 

전남 순천에서 태어나 원광대학교 대학원에서 불교민속학을 전공하여 불교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스무 살 무렵부터 한국과 중국, 일본의 사찰과 고택을 답사하며 수많은 기인, 달사들과 교류를 가져왔다. 이들 재야 고수들과의 만남을 통해 천문, 지리, 인사에 관한 동양강호학의 3대 과목을 한국 고유의 문화 콘텐츠로 자리매김하는 데 주력해왔으며, 동양적 전통 이데올로기를 통해 서구적 가치관에 함몰되어가는 한국의 문화적 미와 전통을 복원하는 작업에 전념하고 있다. 저명한 칼럼니스트로도 활동하고 있는 저자는 현재 '조선일보'에 ‘조용헌 살롱’을 인기리에 연재하고 있다.

 

조용헌은 원광대 불교대학원 교수이자 사주명리학 연구가이다. 사주를 미신으로만 생각하던 통념에서 교수가 사주명리학을 연구한다는 것만으로도 혁신이었다. 대학시절 신문방송학을 전공한 그는 취미로 산 타는 것을 즐기다가 절을 다니게 되었고, 스님들과 가까워지며, 한의학, 풍수, 사주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주를 맞추는 스님들에게서 신기함을 느꼈고, 그 호기심이 그를 사주명리학으로 이끌었다. 그의 설명에 의하면 사주명리학은 도교의 방사(方士=도사)들이 오래 살기 위해 자연의 흐름에 인간을 순응시키는 방법을 찾자는 수련체계였다. 밤과 낮이 음양으로, 사계절이 오행으로, 여름과 가을 사이 정 가운데에 자연의 중심이 되는 흙(토)을 넣어 목화토금수(木火土金水)가 되었다. 조선시대에는 왕실에서 사주 풍수 한의학 전문가를 찾아서 잡과라는 과거를 둘 정도로 어려운 학문이었으나 점차 대중화되면서 조선 후기에는 민간에 자리잡았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을 바탕으로 그는 자신의 연구에 큰 자부심을 갖고 있다.


그는 사주명리학이 가진 상상력이 한국의 미래 문화콘텐츠 사업을 이끌어갈 원동력이라고 주장한다. 미신이라고 치부하는 것 속에 가득 담긴 한국인들의 독특한 상상력이 바로 세계시장의 승부처라는 것이다. 그렇기에 그는 사주명리학과 풍수에 얽힌 다양한 이야기들을 보존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는 서구인들이 아름답다고 말하면 따라가는 현 세태를 비판한다. 서구인들이 무속이 아름답다고 하니, 무속연구를 하고, 탱화가 아름답다고 하니 탱화 연구를 하는 한 발 느린 미의 발견이 아닌, 현상 그대로의 미를 발견하자는 것이다. 그렇기에 그는 사찰기행 이나 잊혀져있던 우리 문화를 소개하는 책들을 통하여 미와 전통을 복원하고자 노력한다.

 

그의 책들은 20년이라는 그의 지난 세월, 그가 무수히 올랐던 산과 한국을 담고 있기에 더욱 공감이 된다. 또한 천문, 지리, 인사(人事)로 대표되는 삼재에 대한 관심과 지식이 가득한 저자의 손길이 있기에 더욱 흥미롭고, 서구적인 시각이 아니라 우리의 시각, 우리 조상들의 시각으로 바라보는 우리 것이기에 더욱 아름답게 느껴진다. 그는 지금도 지난 18년간 한·중·일 3국의 600여 사찰과 고택을 답사하는 과정에서 재야의 수많은 기인, 달사들을 만나며 천문, 지리, 인사에 관한 강호동양학의 3대 과목을 한국 고유의 문화 콘텐츠로 자리매김하는데 주력하고 있다.

 

 

 

 

차는 풍류가 아닌 혁명이다

 

부산 달맞이 고개의 다실, 이기정 二旗亭

 

한국의 상류층은 너무 바쁘다. 저녁 시간에도 약속을 2~3개씩 잡는 사람이 많다. 이렇게 바쁘면 깊이 있는 삶을 살 수 없다. 삶이 얕아지는 것이다. 얕아진다는 것은 결국 품질이 떨어지는 삶을 살고 있다는 이야기가 아닌가! 그렇다면 품질을 높이기 위해서 필요한 장치가 있는가? 나는 세 가지를 꼽는다. 집 안에 세 가지를 갖추고 싶다. 첫째는 다실 茶室이고, 둘째는 중정 中庭이요, 셋째는 구들장이다. 실내에다 정원 또는 조그만 연못을 만들어 놓으면 중정이 된다. 중정이 있으면 바깥에 나가지 않고도, 집 안에서 풍경을 관망할 수 있다. 바깥 경치를 관망하는 것이 아니라, 내부의 풍경을 본다는 것이 중정의 장점이다. 그 다음에는 구들장이다. 피로는 등 쪽의 신경과 근육이 굳는 것이다. 이 등쪽의 뭉친 근육을 풀어주기 위한 장치가 바로 절절 끓는 구들장이다. 끓는 구들장에서 잠을 자고 나면 피로가 풀린다. 그 다음에는 다실이다. 다실은 왜 필요한가? 가내구원 家內救援을 받기 위해서다. 집 밖에 구원이 있는 것이 아니고, 집 안에서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이상을 실현해 주는 장치가 다실이다. 21세기에는 과학적 진리에 의해서 종교적 신념이 해제된 시대다. 다실은 현대인이 집 안에서 신성 神聖을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이다.부산의 달맞이고개에 있는 이기정 二旗亭은 한국적인 다실의 한 예를 보여준다.

 

달맞이고개는 특이한 곳이다. 해운대 바로 옆이다. 도심에서 툭 터진 바다를 볼 수 있는 공간이다. 멀리 가지 않고 도심에서 바다를 직접 볼 수 있다는 커다란 장점이 있다.

 

이기정을 계획한 고명은 어떤 사람인가. 그는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에 나갈 수가 없었다. 해볼 만한 일을 발견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런데 차 茶를 좋아했다. 다방을 해야겠다 싶어 부산 시내에 소화방 素化房이라는 다방을 차렸다. 다방은 물장사에 속한다. 물장사의 길로 접어든 것이다. 그때가 80년대 초반이었다.하루에 수백 개의 찻잔을 수건으로 닦는 일이 주된 일과였다. 그 찻잔을 닦으면서 내면을 응시했던 것 같다. 그러면서 점차 차에 몰두하게 되었고, 다법 茶法의 세계로 나아갔다. 다법은 차를 마시는 의례를 가리킨다. 다례 茶禮와 같은 말이다. 우리말에 '차례 지낸다'는 말은 남아 있지만, 그 차례는 중간에 실전 失傳되었다. 그런데 고명은 이 실전된 다례(차례)를 복구하는 일에 자신의 청춘을 바친 것이다. 우선 일본의 다례(차례)를 참고했다. 일본의 다례도 따지고 보면 백제에서 넘어간 것이 아닌가. 중심부에서 없어진 것이 주변부에 그 원형이 보존되어 있는 경우가 있는데, 다례가 바로 이러한 경우다. 고명은 일본의 다례를 참고하면서 자신의 다법을 가다듬어 나갔다. 그 다법이 1백20가지에 이른다고 한다. 다법을 행하려면 대략 30분에서 1시간이 걸린다. 다법을 행하는 동안 얻는 효과는 무엇인가. 다법을 행하다 보면 일단 그 동작들에 정신을 집중해야 한다. 딴생각을 하면 다법을 따라갈 수 없다.

 

 

풍류와 실용이 가득한 집

 

논산 명재고택 明齋古宅

 

명재고택의 숨은 그림은 석가산에 있다. 석가산 石假山은 인공으로 조성해 놓은 조그만 돌산을 가리킨다. 서양의 정원에는 없는, 하지만 동양의 조경 전통에서는 아주 중시했던 포인트가 석가산이다. 동양의 식자층들은 입산수도 入山修道를 하고 싶어했다. 몸은 세간에 있지만 마음은 항상 산을 그리워했다. 그렇지만 먹고사느라고 산에 갈 수 없으니까, 집 안에 산을 통째로 옮겨다 놓은 것이다. 정원에 있는 석사산을 보면서 등산 욕구를 대리 충족했다고나 할까. 명재고택 바깥 사랑채 마루 밑에는 검은색을 띤 높이 30cm 크기의 돌들이 땅에 박혀 있다. 어떻게 보면 수석 무더기를 박아 놓은 것 같다. 바로 금강산을 상징하는 석가산이다. 금강산에 직접 갈 수는 없지만, 사랑채에 앉아서 마루 밑을 내려다보면 거기에 금강산이 항상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명재고택 사랑채는 금강산 구름 위에 떠 있는 집이 된다. 주인은 가정집에 있는 것이 아니라, 금강산 위에 사는 신선이 되는 것이다.금강산 아래쪽 마당에도 돌무더기가 쭉 이어져 있다. 언뜻 보기에는 화단을 둘러싼 돌로 보인다. 이 돌들은 무산십비봉을 상징한다. 중국에 있는 산 이름으로 한자 문화권의 시인들이 가장 보고 싶어한 산이 무산십이봉 巫山十二峰 이다. 중국 양쯔강을 배를 타고 가다 보면 협곡이 나온다. 독일의 로렐라이 언덕은 여기에 비하면 족탈불급 足脫不及이다.

 

 

보통 사람의 토종  정원

 

나주 죽설헌 竹雪軒

 

유현함의 그늘을 제공하는 좌탱자 우꽝꽝을 통과해 좌측으로 꺾으면 살림채인 단층 벽동집이 나온다. 서민이 대출받아 지은 단출한 집이다. 거실에 들어서면 마룻바닥이 질박하다. 폐교된 교실의 마룻바닥을 가져다가 사포로 다듬은 것이다. 마루 끝에는 검은색 벽난로가 실내 공기를 훈훈하게 데워주고 있다. 거실 옆방은 한쪽 벽면이 온통 투명한 유리다. 유리 밖으로는 시퍼런 몸통을 지낸 왕대가 쭉쭉 뻗어 있는 모습이 달력 그림처럼 보인다. 선비는 대나무를 보아야만 속기 俗氣를 턴다고 했던가! 대나무를 사철 잎사귀가 푸르고, 바람에 흩날릴 때마다 댓잎에서 흔들리는 소리가 빗소리 같기도 핟. 그리고 대숲에 들어가면 서늘한 느낌이 있다. 이 서늘한 느낌이 삶에서 필연적으로 다가오기 마련인 과열을 내려주는 작용을 한다. 실제로 이 집은 나주와 광주 일대의 강호제현들이 수시로 모여서 시서화 詩書畫를 논하고, 문사철 文史哲을 이야기하며 노는 아카데미이자 살롱이다. 이렇게 서로 모여 놀아야만 중년에 직면하는 늙음과 병과 죽음의 근심을 다소나마 털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고생과 걱정만 하기 위해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은 아니지 않는가! 대숲의 반대쪽으로는 노란 창포 밭이 널려 있다. 500평 가량 되는 노란 창포 밭은 5월이 한창이다. 5월의 밤에 이 창포 밭 앞에 서 있으면 내가 왜 세상에 태어났는가를 반쯤은 알게 된다. 달밤에 비치는 달빛과 노란 창포의 궁합은 가히 환상적이다.

 

 

소박하되 품격이 있는 선비의 집

 

진주 석가현 夕佳軒