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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08.12 신경림 - 아버지의 그늘

신경림 - 아버지의 그늘

좋은 글귀 2011.08.12 13:19 Posted by 따시쿵

 

 

아버지의 그늘
                                            신경림
 
툭하면 아버지는 오밤중에
취해서 널브러진 색시를 업고 들어왔다.
어머니는 입을 꼭 다문 채 술국을 끓이고
할머니는 집안이 망했다고 종주먹질을 해댔지만,
며칠이고 집에서 빠져나가지 않는
값싼 향수내가 나는 싫었다
아버지는 종종 장바닥에서
품삵을 못 받은 광부들한테 멱살을 잡히기도 하고
그들과 어울려 핫바지춤을 추기도 했다
빚 받으러와 사랑방에 죽치고 않아 내게
술과 담배 심부름을 시키는 화약장수도 있었다
 
아버지를 증오하면서 나는 자랐다.
아버지가 하는 일은 결코 하지 않겠노라고
이것이 내 평생의 좌우명이 되었다
나는 빚을 질 일을 하지 않았다.
취한 색시를 업고 다니지 않았고,
노름으로 밤을 지새지 않았다.
아버지는 이런 아들이 오히려 장하다 했고
나는 기고만장했다.  그리고 이제 나도
아버지가 중풍으로 쓰러진 나이를 넘었지만
 
나는 내가 잘못했다고 생각한 일이 없다
일생을 아들의 반면교사로 산 아버지를
가엾다고 생각한 일도 없다.  그래서
나는 늘 당당하고 떳떳햇는데 문득
거울을 쳐다보다가 놀랐다.  나는 간 곳이 없고
나약하고 소심해진 아버지만이 있어서
취한 색시를 안고 대낮에 거리를 활보하고,
호기있게 광산에서 돈을 뿌리던 아버지 대신
그 거울속에는 인사동에서도 종로에서도
제대로 기 한번 못 펴고 큰 소리 한번 못 치는
늙고 초라한 아버지만이 있다.


음력 7월 27일은 아버지 기일이다.

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늘 술에 취해 있거나
방에서 누워 계셨다는 것 밖에는 .........

생전에 자식들이나 어머니에게 잘 해 주시지 못하고
가셨는지, 왜 그리 사셨냐고 따지고 싶었다.

그러나, 그 모든 것들이 나의 어리석고 어린 생각이였다는 것을
나도 한 가정의 가장(家長)이 되고 보니 알겠습니다.

지금은 좋은 곳에서 편히 쉬고 계실 아버지에게
늦었지만 소리내어 말해 봅니다.

'아버지,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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