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둘레길 도보 여행

일상다반사 2013. 8. 12. 18:17 Posted by 따시쿵

지리산 둘레길을 아들과 같이 2박 3일 코스로 돌고 왔다. 

산이며 논이며 나무며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이 짙푸른 초록색으로 색칠해져 있는 자연을 만끽했다.


안양역에서 무궁화호를 타고 남원역에서 하차.

우리와 같이 내리는 사람들은 별로 없었다. 

남원역 앞에서 주천으로 들어가는 버스가 있다고 하기에 여기저기 물어 봤지만 아는 사람은 없었다. 둘레길 지도에는 역앞 수퍼에서 바로 타면 된다는데 수퍼가 없다...ㅠㅠㅠㅠㅠㅠ


어째든 택시를 타고 주천 1코스 둘레길 출발점에 도착.

외국에서 시집 온 가이드가 빨간색 화살표만 따라가면 된다는 상냥하지 않은 말투로 알려 준다. 신경쓰지 않았다. 둘레길이 어려워 봐야 둘레길이지...일부러 다른데로 들어가지 않으면 되겠다 싶었다.


논두렁과 시냇물과 작은 천을 사뿐히 뛰어 넘어서 아들과 재잘재잘 떠들면서 간다.

아들보다는 내가 더 들떠 있다. 뭥미???? 어째든 좋다.


자꾸만 산으로 인도하는 빨간색 화살표를 따라 올라가다보니 이건 둘레길이 아니라 등산이다. 아주 빡신 등산.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산 타는 것도 지리산 둘레에 있으니 둘레길은 맞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예상과는 180도 어긋난 둘레길 1코스.


자꾸만 올라가는데 끝이 안 보인다. 물통에는 물도 떨어졌다. 지나가는 사람도 없다. 뛰엄뛰엄 지나가는 사람들도 만났지만 차마 물 좀 달란 말은 못하겠다. 아들은 목마르다고 얼굴색이 벌써부터 변해 있다.


지쳐 앉아 쉬는데 말소리가 멀리서 들린다. 가서 어느 정도 가야하는지 물어 보려고 얼른 발걸음을 옮겨본다. 부부가 앉아서 쉬고 있다. 기진맥진한 부인이 먼저 어느 정도 남았는지 도리어 나한테 물어본다. 내가 물어봐야 하는데....쩝 어째든 힘들어 보인다. 남편되는 사람이 쉬엄쉬엄 가란다. 산을 넘어가야 한단다....이론...


지친 아들을 다독여서 출발해서 다리가 아프면 바로 쉬었다. 뽀다구 나는 아빠를 보여주는 건 이제 포기다.


쉬다보니 지나는 무리들이 2쌍이 쌩하니 지나간다. 뭘 먹고 저리 힘이 있는지 물어보고 싶은 생각도 들지만 내 처지를 생각해서 얼굴 인사만 한다. "안녕하세요?". 우리를 보고 부자끼리 왔다면서 신기하면서도 부러운 듯이 아빠와 아들이냐고 물어 본다. 아들은 그것이 왜 부러운지 모르는 눈치다. "아빠, 아빠랑 같이 오면 이상한거야??" 이상한게 아니고 부러워서 그런거야. 


다시 정상으로 출발....


돌산이다.....


우여곡절 끝에 도착한 정상에서 내리막 길로 가다보니 계곡물이 있다. 배낭을 벗고 머리에 물을 가져다가 쏟아 붓는다. 와우 시원하다. 물도 먹어 볼까나? 물병에 물을 떠서 벌컥벌컥.....아들도 벌컬벌컥..... 지금까지 살아 오면서 맛난 물맛을 실컷 맛봤다.


내리막길은 도란도란 수다를 떨면서 산속의 울창한 소나무 군락을 구경하면서 내려왔다.


어느덧 산을 내려와서 식당을 찾는데 없다. 물은 있는데 밥이 먹다. 나도 아들도 모두 배 고프다. 

시골길을 여름의 태양이 강렬하게 내리쬐는 차도 옆으로 걸어가면서 강아지풀이며 이름을 알수 없는 풀들을 따서 손에 들고 걸어간다. 재밌다.


드디어 목적지 민박에 도착.


시원한 물로 샤워하고 점심 못 먹었다고 하니 과일을 주신다....게눈 감추 듯 다 먹었다.....아들도 과일을 가려서 먹는데 그런게 어딨으랴.....싹싹 긁어서 먹었다.....


저녁에 먹을 과자를 사러 가게를 찾았는데 없다. 산동네 오지에 있는게 맞다. 하루에 버스는 3번 온단다...정말 정말 오지 맞다.....


민박하는 집에 소를 키우는데 아들은 소를 처음봐서 그런지 신기해 한다. 쓰다듬어도 되? 덩치가 산만한데 아들이 무서운가 보다. 소는 엄청엄청 순하게 생겼다....나두 예전 시골에서 소를 키웠지만 지금은 소를 보는 것 자체가 신기하다....


저녁 먹고 민박집 주인이랑 몇 마디 나누고 내일을 위해서 9시에 잠자리에 들었다....바로 꿈나라로 고고씽했다.


7시에 아침 밥을 먹고 인월로 출발...


차도로 걸어가는데 저 멀리서 우리보고 뭐라뭐라 한다. 안 들린다...

가까이 가서 말씀을 들어보니 둘레길은 차도로 걸는게 아니란다...어쩐지 어제부터 차도로 걷는게 이상하다 생각은 하고 있었다...ㅎㅎㅎㅎ


인월로 가는 중에 우리가 걸어온 길과 걸어갈 길을 사진에 담아 본다. 


아래 사진 멋있지 아니한가??? 걸어온 길과 걸어갈 길



지나온 길



                                    

가야할 길



인월에서 물냉면으로 점심을 먹고 이틀째 민박집으로 택시를 타고 갔다.

1박 2일에 나온 집이라서 그런지 다른 민박집들은 손님들이 없는데 여기는 4팀이나 민박을 하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짧은 2박 3일의 둘레길 여행이지만 아들과 단 둘이 떠난 것은 처음이고 많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기회였으며 한여름의 강한 햇빛으로 인해서 힘들었는데 묵묵히 따라 준 아들에게 감사한다. 이번 여행길은 아들과 같이 한 여행이였지만 어찌보면 나 자신이 힐링이 필요한 시점이였고 시골에서 맑은 공기와 인심 좋은 사람들을 만나서 얘기를 할 수 기회였으며 다른 사람들이 사는 모습들을 생생히 볼 수 있는 시간이였다.


아내와 같이 동행을 하지 못한 아쉬움은 있었지만 떨어져 있는 동안에 서로에 대한 애틋함은 새록새록 생기는 계기도 되었다.


다시 일상 생활로 돌아왔지만 여행의 여운은 아직도 온 몸에, 머릿속 기억에 오롯이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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