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윤 - 홀로서기2

좋은 글귀 2011. 10. 26. 09:19 Posted by 따시쿵


홀로서기2 
 
                                                  서정윤
 
1
추억을
인정하자
애써 지우려던
내 발자국의 무너진 부분을
이제는 지켜보며
노을 맞자.

바람이 흔들린다고
모두가 흔들리도록
버려 둘 수 없다는 걸
깨닫기까지
얼마나 많은 것을 또
잊어야 했나?
 
아름다움을 잃어버리는 순간은
육신의 어떤 일도
중요하지 않다.
내 가슴에 쓰러지는 노을의 마지막에 놀라며
남은 자도 결국은 떠나야 한다.
 
2
아무도
객관적인 생각으로
남의 삶을
판단해선 안 된다.
그 상황에 젖어보지 않고서
그의 고민과 번뇌를
이해할 수 있을까
그가 가졌던
그 숱한 고통의 시간을
느껴보지 않고서, 그 누구도
비난해선 안 된다.
너무 자기 합리화에
익숙해져 있는 우리지만
그래도 가슴 아득한 곳에서
울려나오는 절망은 어쩔 수 없고
네 개의 가시로 자신은 완전한 방비를 했다면
그것은
가장 완전한 방비인 것이다.
 
3
나로 인해
고통 받는 자
더욱 철저히 고통하게
해 주라.
고통으로 자신이
구원 받을 수 있을 때까지
 
남이 받을 고통 때문에
자신을 희생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가.
아닌 것은 아닌 것일 뿐
그의 고통은
그의 것이다.
그로 인해 일어난 내 속의 감정은
그를 더욱 나약하게 만들 뿐
아닌 것은 언제나 아닌 것이다.
그로 인한 고통이 아무리 클지라도
결국은
옳은 길을 걸은 것이다.
 
4
나의 신을 볼
얼굴이 없다
매일 만나지도 못하면서
늘 내 뒤에 서 있어
나의 긴 인생길을 따라다니며
내 좁은 이기심과 기회주의를
보고 웃으시는 그를, 내
무슨 낯을 들고 대할 수 있으리.
 
부끄러움으로 인해
자신을 돌아보지만
자랑스레 내어 놓을 것이라곤
하나도 없기에
좀더 살아
자랑스러운 것 하나쯤
내어 보일 수 있을 때가 되면
자신있게 신을 바라보리라
지만,
언젠가 되어질지는, 아니
영원히 없을지도 모르겠기에
<나>가 더욱 작게 느껴지는 오늘
나를 사랑해야 할 것인가, 나는.
 
5
나, 인간이기에 일어나는
시행착오에 대한 질책으로
어두운 지하 심연에
영원히 홀로 있게 된대도
그 모두
나로 인함이기에
누구도 원망할 수 없으리
내 사랑하는 내 삶에 대한
책임은
나에게 있으니
나, 유황불에 타더라도
웃으려고 노력해야지.
 
내가 있는 그
어디에도 내가 견디기에는
너무 벅찬데
나를 이토록 나약하게 만든
신의 또다른 뜻은 무엇일까

진작에 내가 큰 질그릇으로 변했다면
하나님은 나에게 이런 시련을 주지 않았으리....

하나님도 참고참고 보다가
영 인간 구실을 못하는 것을 보고
제발 인간답게 살아라
내지는
더 큰 시련이 밀려오기 전에
단련을 시키는 것이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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