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섭 - 성북동 비둘기

좋은 글귀 2012. 11. 23. 18:19 Posted by 따시쿵

 


성북동 비둘기


                     김 광 섭

 

 

성북동 산에 번지가 새로 생기면서

본래 살던 성북동 비둘기만이 번지가 없어졌다.

새벽부터 돌 깨는 산울림에 떨다가

가슴에 금이 갔다.

그대도 성북동 비둘기는

하느님의 광장 같은 새파란 아침 하늘에

성북동 주민에게 축복의 메시지나 전하듯

성북동 하늘을 한 바퀴 휘 돈다.

 

성북동 메마른 골짜기에는

조용히 앉아 콩알 하나 찍어 먹을

널찍한 마당은커넝 가는 데마다

채석장 포성이 메아리쳐서

피난하듯 지붕에 올라앉아

아침 구공탄 굴뚝 연기에서 향기를 느끼다가

산1번지 채석장에 도로 가서

금방 따낸 돌 온기에 입을 닦는다.

 

예전에는 사람을 성자처럼 보고

사람 가까이

사람과 같이 사랑하고

사람과 같이 평화를 즐기던

사랑과 평화의 새 비둘기는

이제 산도 잃고 사람도 잃고

사랑과 평화의 사상까지

낳지 못하는 쫒기는 새가 되었다.

 

 

김광섭 시인의 호는 이산(怡山). '기쁜 산'이다. 그는 시인일뿐만 아니라 창씨 개명을 반대한 애국 교육자, 해방 후 중앙문화협회를 창립한 우익 문단의 건설자, 이승만 대통령 공보비서관을 지낸 정치인. 언론자 편집국장을 지낸 언론인으로 우리의 현대사를 정말 '산'처럼 살았다. 실제로도 그는 늘 산을 향해 있었다.

 

'남포 깐다', '남포 튼다'는 말이 있었다. 남포란 다이너마이트를 이르는 말이다. 이 개발 저 개발로 너도나도 산업화의 역군이였던 1960~1970년 내내 대한민국 전역에서 이 산 저 산을 깨는 남포 소리 울려 퍼졌다. 산을 깎아 돌을 채취하고 도로를 만들고 빌딩을 올리곤 했다. 뻥뻥 남포를 까면 산에 살던 뭇 짐승들은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고 강에 살던 뭇 물고기들은 기절을 해 배를 뒤집은 채 떠내려가기도 했다. 뻥뻥 남포 까는 소리에 밤 보따리를 싸 들고 서울로, 서울로 몰려든 사람들이 산동네, 달동네로 몰리던 시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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