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남자는 그렇게...

나들이 2011. 4. 11. 11:49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두 남자가 있었다.
그들은 서른 살의 나이 차이를 극복하고 때론 친구처럼, 때론 부모자식처럼 그렇게 지내는 사이였다.
그러던 어느 날,  나이를 더 먹은 수염난 남자(이하 수염)나이를 덜 먹은 솜털난 남자(이하 솜털)에게 같이 뛰어보지 않겠냐고 제안했다.
늘상 그러하였듯 아무 생각없는 솜털은 흔쾌히 그러마 하고 승낙했다.
뜀박질 이후에 벌어질 사태를 전혀 예상하지 못한 채....

경제활동을 하는 사람이 수염이었기에, 참가비는 수염이 내기로 하고 주최측에 등록을 했다.
얼마 후 주최측에서 보낸 개구리 칼라 기념티셔츠와 배때기에 붙이는 번호판, 그리고 신발끈에 묶는 칩이 도착했고
두 남자는 모든 준비를 수염의 마눌이자 솜털의 엄마인 그 여자(이하 종년)에게 맡기고 결전의 날을 위해
또 아무 생각없이 잠을 잤다.

결전의 날이 되었다.
예상대로, 수염은 자기가 뻐끔대는 담배쪼가리 하나도 안챙긴 주제에
조금이라도 부실한 준비상태가 눈에 띄면
모든 책임을 종년에게 돌렸다.

'이런 시베리아 벌판에서 귤을 우라지게 까먹을 개나리 같으니라구.....쯧.'
종년은 이런 욕이 입 밖으로 튀어 나왔지만 
두 남자의 성공적인 완주를 위해
초인적인 인내심으로 참기로 했다.

출발 시간이 다가오자 두 남자는
배설의 욕구를 해결한답시고 가서
30분이 지나도록 오지 않았다.
덕분에 종년은
흐리멍텅하고 구중중하고 바람부는 추운 날
길바닥에서 개떨듯 떨고 서 있어야 했다.

드디어 출발을 알리는 딱총소리가 요란하게 울리고
두 남자는 개구리마냥 팔딱거리며 다른 개구리들과 함께 사라졌고
종년은 두 남자들이 벗어 놓은 허물을 가지고
게딱지만한 그들의 고물차로 와서
게임질을 하며 하염없이 그들을 기다렸다.

결국 시간 내에 완주하고 돌아온 두 남자는
남들 다 하는 완주를 지들만 하고 온 양
온갖 후까시를 다 잡고 힘들어 죽는 표정을 지으며
말도 안되는 가격에 말도 안되는 무게의 돼지고기를
비싸터진 압구정에서 그렇게 해치워 먹었다.

후기 : 집에 돌아온 후 솜털은
         다리가 많이 아프다며 내내 징징댔다.
         게다가 다음날 아침, 코피까지 쏟았다.
         무식이 용감이라고, 페이스 조절이고 나발이고
         아무것도 모르고 냅다 뛰기만 한 결과가 초래한 참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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